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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삼백 두번째 편지 - 2018년 11월 13일      

100년 편지

안창호 선생님께 -최석우-


도산 안창호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1980년대 초반 대학 시절 흥사단 아카데미 회원으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죄송하게도, 처음에는 제가 몸담게 된 동아리가 선생님께서 설립하신 흥사단의 학생조직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감히 선생님의 시대와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제 선배와 동료들이 나름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때 또한 사찰(査察)을 피해야 했기에, 조직의 이름을 노출한다는 건 금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오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흥사단 아카데미는 공개된 서클이었다고 합니다. 광주항쟁의 충격은 선배들로 하여금 이른바 ‘혁명의 전위’를 자처하게 이끌었고, 어쩌면 분에 넘치게, 저희는 지하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당시 “언더서클”이라 불린 캠퍼스의 소모임들은 자신을 독립운동 선배들이 꾸렸던 독서회의 맥을 잇는 조직이라며 으쓱했으니,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학생운동권 내부에서 “아카”라고 통하던 언더서클. 그것이 흥사단 아카데미의 바뀐 이름이었습니다. “아카”가 아카데미를 줄인 말인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녀석이 학우들의 선봉에 서겠다고 입술을 깨문 것도 어설펐지만, “아카”라는 어감에서 바더마인호프 같은 적군파를 연상하고는 몸을 부르르 떤 것은 숫제 코미디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선생님께서 그 모습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황당하셨겠습니까?

2학년이 될 무렵, “아카”가 흥사단 아카데미를 숨긴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입이 싼 친구가 술 몇 잔에 얼굴이 붉어져 뱉은 말. “너네 흥사단 아카데미래.” 그 순간 제가 받은 솔직한 느낌은, 선생님께는 거듭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실망이었습니다. 흥사단? 도산 안창호? 민족개조론이잖아?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혁명의 적자(嫡子)가 아닌 거였어? 어처구니없으시겠지만, 실제로 그랬습니다.

젊은이가 들뜨는 건 당연합니다. 치기는 본받을 게 아니나, 대개 치기와 열기는 함께 치솟는 게 아니겠습니까. 역사는 그런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랐습니다.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동시에, 청년들을 잘 키우자고 역설하셨지요. 젊음을 불쏘시개나 총알받이로 사용할 권리는 누구도 허락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도산 안창호 선생

불행하게도, 선생님의 그 뜻을 대한민국은 받들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무실역행의 도량이 되기는커녕, 도망가고 줄 서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인 게 국사시간이었습니다. 고종이 소위 ‘개명군주’였다면, 갑오년의 농민군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청원으로 독립이 될 만큼 제국주의가 물렁물렁한 것이었나요? 이렇게 배웠으니, 저희 세대가 선생님을 민족개조론자라고 잘못 알고 있을 밖에요.

“혹자는 혁명수단에 의하여 완전한 독립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실력이 없고 또 단계를 밟지 않은 때문이다. 차라리 자치를 먼저 얻고, 그리고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창도하나 이것은 큰 잘못이다. (중략) 우리들의 생명의 부활을 위해서는 혁명의 한 길이 있을 뿐이며, 그것을 유력하게 함에는 보편적이고 또 유력한 일대혁명당의 조직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산만적 운동보다도 조직적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26년 7월 8일 연설 중에서)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우리 민족은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의 낡고 썩은 질서에 일제의 압제와 수탈이 겹쳐졌습니다. 독립전쟁과 독립혁명만이 민족과 민중이 함께 살 길을 열 수 있노라고, 선생님께서는 믿으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는 민주공화정으로, 경제는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균형을 이루려 하셨지요? 그런 맥락도 모르고, 선생님을 이광수 따위의 정신적 지주로 여겼던 저를 꾸짖어주세요.

최근 저는 30년 전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 둘과 어울려 우리 역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애쓰셨던 신민회도 다시 찾았고, 임시정부도 다시 보았습니다. 그런 중에 선생님의 어릴 적 일화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옛날 이야기책을 소리 내어 읽기를 좋아하셔서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셨다면서요? 선생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이웃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분이셨네요.

우리 현대사에는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가운데 이웃의 작은 행복을 가슴 한 곳에 담을 줄 알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도 벌써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다시는 강퍅한 늙은이가 이 강산을 할퀴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바라셨던 것처럼, 청년의 맑고 푸른 심성이 이 나라를 가꿀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

흥사단 아카데미의 제자가 엎드려 절하고, <백년편지>라는 이름으로 문안을 올립니다. 부디 이 땅의 청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세요.

             최 석 우

 

본회 회보(독립정신) 편집위원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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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2:37 2018/11/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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