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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 이른 세번째 편지 - 2017년 9월 19일      

100년 편지

서울토박이 독립운동의 자존심 김상옥 의사께 -박진호-


 김상옥의사님은 해방 후 어떤 민족의 모습을 꿈꾸셨나요? 할아버님의 1919년도 혁신공보 34호 6월29일자 특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의 취임연설을 읽으며, 평생 실천 해 나가신 독립운동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상옥 의사 전신 영정-상해에서 촬영

 (본문 : 우리가 우리 주권만 찾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위에 모범적인 공화국을 세워 이천만으로 하여금, 천연의 복락을 누리려 함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희생하여 이 목적을 달성하여야 하겠오.)

 새벽이면 낙산에 올라 소나무에 태극기를 다시던 마음과 동대문 교회의 믿음 생활 속 함께하신 말씀은 이사야서 50장 10절 이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종의 말에 순종하느냐? 빛이 없이 어둠 속을 걷는 자는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느님께 의지하여라.)

 그렇습니다. 저는 할아버님의 마음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헤아려 보려고 노력 해 왔습니다. 저는 김상옥의사님의 형님의 딸 김간난의 첫째 외손주 박진호입니다.

 할아버님의 마음, 독립운동가의 심정을 시 한편으로 써 봤는데 이 시의 마음이 잘 전달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시 한편 읽어드리겠습니다.

 

 어둠을 만날 때

                                   박진호

 잠 못 이루는 어둔 밤

 사막을 건너야 하는 순간이 올 때

 

 흔적은 볼 수 없다

 휩쓸려 가는 어지러운 시간

 

 별빛 따라 모래 언덕 넘는

 갈증의 황량함

 

 그럼에도

 별빛을 품는 온정에 한 걸음씩 간다

 

 할아버님의 발자취는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상해에서 활동하시던 할아버님께 김구 주석님이 국방부장관 격에 임명하시겠다고 했어도 귀국해 돌아가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지 김상옥의사 동상 (1998.5.28 건립)_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대학로)

 국외에서 태동한 독립 투쟁 단체 의열단과 서울의 암살단과 남원의 대동단의 조직 연계 속 점조직 식 큰 팔도의 독립 투쟁 활동망이 있었고, 국내 국외를 아우르는 대표자가 당신이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안중근 의사 이후 10년 내 큰 거사가 없어 스스로 거사를 계획하시고 민족의 뜨거운 피를 일깨우고자 하셨습니다.

 스스로 혈혈단신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을 비롯한 3차에 걸친 서울 시가전 가운데 서울 시 한복판 효제동에서 천명의 무장경찰과 3시간 반 이상의 총격전을 벌인 예는 일제 35년 동안 김상옥 의거 이외에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는 점, 한국인의 기개를 유감없이 발휘하신 김상옥 할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많은 가족사가 있었지만 할아버님 질녀이시고, 저의 외할머님이신, 김간난 할머님은 일제시대 동경 국제 사이클 우승자 홍종성과 결혼하셨고, 홍종성 외할아버님은 엄복동 만큼 유명하셔서 제가 어릴 때 이웃의 할아버님들께서 “김상옥 의사와 홍종성 할아버님이 서울의 자랑이며 자존심이었다” 는 말씀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가 갈 길 따뜻한 민족 사랑의 길, 문학의 길을 열어 주신 김상옥 할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박 진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펜 한국본부 회원

동국문인

가톨릭문인회회원

문파문학회원

시계문학회원

대표시 : 어둠을 만날 때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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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13:38 2017/09/1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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