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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 여든 한번째 편지 - 2018년 1월 16일      

100년 편지

오로지 상해 임정과 함께 하신 이규홍 선생님 -한찬욱-


이 편지는 선생님의 외손자이신 김동식(사월혁명회 공동의장) 선생의 증언과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사월혁명회가 조사한 사료를 바탕으로 쓰는 편지입니다.

김동식 선생은 집안이 어려워 어릴 때 외가에서 살면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며 자랐다고 합니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양산에서 천석꾼 집안에 태어나 임시정부 재무총장에 임명 될 정도로 독립운동 자금에 깊이 관여하시며 상당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납한 것을 김동식 선생은 긍지로 여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규홍

이규홍 선생님.

이제 1년 뒤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작년 11월16일 촛불정부라 자부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국빈방문 마지막 날에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경 임정 청사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만나 “임시정부는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법통이다”며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나라도 미래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9년 맞이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 100주년 정신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국격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규홍 선생님!

선생님께서 돌아가신지 무려 78년 만에 임정이 정부로부터 올바른 평가와 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백농(白農) 이규홍선생님은 상해 임시정부 초기 백(白)자 돌림 호를 쓰는 육백(六白)중의 한분이었지요.

선생님 포함, 육백은 백민(白民) 황상규(黃尙奎, 1890~1941),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1889~1930), 백연(白淵) 김두봉(金枓奉, 1889~?),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1943), 백범(金九) 김구(金九, 1876∼1949)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은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 후 1913년 도일하여 1916년 명치대학 법학부를 졸업합니다. 이후 부산에서 안희제 선생 등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914년 부산에 세운 회사 백산상회(白山商會) 건너편에 1917년 일광상회(一光商會)라는 위장 무역업을 경영하며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합니다.

그리고 선생은 1919년 서울에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신 후 임정 재정차장을 지내던 중 과로로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신 윤현진 선생(건국훈장 독립장 추서)과 함께 4월에 중국 상해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도항하였다고 1925년 일제문건 [요시찰인명부]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선생의 삶은 1919년 상해 임정 수립부터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까지 오로지 상해 임정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상해 임정 수립과 운영에 활약하신 것입니다.

이만규가 쓴 『여운형투쟁사』에는 “1919년 4월 1일쯤이다. 상해 프랑스 조계에 조동호, 이동녕, 이시영, 조완구, 조성환, 김동삼, 조용은, 신규식, 신석우, 여운홍, 현순, 최창식, 이광수, 신익희, 유치진, 이규홍 등 수십 명과 함께 독립운동 기관을 세우자는 의논을 할 때였다.”라고 선생도 함께 참가 한 것이 나옵니다.

이후 상해 임정이 4월13일 수립되지만 당시 임정은 안창호, 이승만 등 주요 지도자가 상해에 있지 않은 관계로 선생을 비롯한 차장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선생은 출범한 임정에서 학무차장, 내무차장으로 활동하십니다.

그리고 이승만의 위임통치 문제로 임정이 논란이 일자 1921년에는 임시의정원의원, 상해 국민대표회 기성회 조직의원으로 임정 개조와 헌법 개정 작업에도 참가하십니다.

아울러 이승만 불신임과 이승만 탄핵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셨고 1924년 재무총장, 1925년 외무총장과 재무총장, 1926년 의정원 부의장(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1926년 김구 국무령체제의 민족유일당운동이 비록 1927년 장개석의 반공 쿠데타에 따른 중국 혁명의 급격한 변화와 코민테른의 12월테제 그리고 중국의 국공분열로 좌절되었지만 선생은 임시정부 헌법 약헌기초의원과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집행위원으로 독립운동 통합운동에 참가하십니다.

임시정부 신년축하식에 참가한 이규홍(위에서 2열 왼쪽에서 첫 번째), 윤현진(위에서 2열 오른쪽에서 세 번째) 선생

선생의 상해 임정 활동에 대한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선생의 마지막 활동은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선생의 의거가 성공하여 체포되자 자전거로 프랑스 조계에 거주하는 애국지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피난을 권유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선생의 열정적인 독립운동은 하늘도 무심하게 1935년 중증 폐결핵에 걸려 귀국하면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일제 고등계 형사의 감시 아래 대석리 생가에 연금되어 투병하시던 중에 1939년 5월에 운명하십니다.

존경하는 이규홍 선생님,

그런데 불행하게도 선생이 상해 임정에서 헌신적으로 일제에 맞서 투쟁하신 활동은 묻혀져 있고 잊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고 보훈도 되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다행히 지난 8월14일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해 “늦기 전에 독립유공자와 유적을 더 많이 발굴하고 연구해 역사에 기록되게 하겠다”는 말씀에 외손자이신 김동식 선생은 희망을 가지며 할아버지의 조국 독립운동의 진실이 올바로 평가되면 여한이 없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이규홍 선생님,

자랑스러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님!

조국은 기억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름과 걸어온 길을!

             한 찬 욱

 

전 『민족21』 사장

전 민족일보사건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

현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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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13:58 2018/01/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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