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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아흔여섯 번째 편지 - 2018년 8월 21일      

100년 편지

병약한 몸으로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약한 신의경 지사님께 -최서영-


“어머니! 지금 우리는 세계열강에 독립을 호소하고 나라를 찾을 때입니다. 국민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서야 합니다.”

이는 신의경 지사님께서 어머니 신마리아 여사에게 건넨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신의경 지사님이 일제 경찰에 잡혀가기 일주일 전, 정신여고 교감이던 어머님께서는 이미 그 조짐을 눈치 채고 따님인 지사님께 각별히 몸조심하라고 하셨다지요?

세상 그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딸이 일제 경찰에 잡혀가길 바랐겠습니까? 당시에 신의경 지사님은 어머니와 함께 정신여학교에 함께 근무하고 계셨기에 더더욱 어머니의 마음은 노심초사였을 것입니다. 지사님이 관여하고 있던 대한애국부인회가 정신여학교 구내에 사무실을 쓰고 있었으니 어머니의 걱정은 남달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의경 지사님!

지사님은 어린 시절 몹시 병약하여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행여 병마에 목숨을 잃을까봐 애지중지 키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손녀딸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좋은 약은 다 구해다 먹였을 뿐 아니라 가마솥에 소뼈를 고아 먹였는데 소의 숫자만도 300마리 정도였다니 할머니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을 헤아릴 수 있을 듯합니다.

대구감옥소 동지들 1.김영순 2.황애덕 3.이혜경 4.신의경 5.장선희 6.이정숙 7.백신영 8.김마리아 9.유인경 (사진 연동교회 제공)

그렇게 애지중지 자라난 지사님은 1918년 3월 25일,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으면서 대한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기독교회·병원·학교 등을 이용하여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였으며 신의경 지사님은 이 단체에서 서기로 뛰셨지요.

“아! 우리 부인도 국민 중의 한 사람이다. 국권과 인권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되 후퇴 할 수는 없다. 의식 있는 부인은 용기를 분발해 그 이상(理想)에 상통함으로써 단합을 견고히 하고 일제히 찬동해 줄 것을 희망하는 바이다.”

이는 신 지사님이 활약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설립 <취지 2조> 내용으로 지사님은

국권회복을 위해 앞으로 전진하는 길 밖에는 없음을 알고 뛰셨을 것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지사님의 어머니인들 왜 그 상황을 모르셨겠습니까? 하지만 병약한 몸으로 행여 잡혀 들어가는 날이면 그 모진 고문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려하던 일이 정신여학교에서 벌어졌던 것이지요.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어머님이 보는 앞에서 쇠고랑을 채워 끌고 간 지사님을 비롯한 대한애국부인 회원들을 어머니는 망연자실 바라다 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신의경 지사님을 비롯하여 잡혀간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김마리아(25살), 부회장 이혜경(29살), 총무부장 황에스더(25살), 서기 김영순(24살), 재무부장 장선희(23살),적십자부장 이정숙(21살), 결사대장 백신영(30살) 등이 쇠고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겪었을 어머님의 정신적인 충격이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고통이셨을 것입니다.

이날 일로 결국 어머님은 신의경 지사님이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1921년 6월 24일 49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으니 그런 비극이 어디 있을는지요.

신의경 지사님!

대구감옥소에서 할머니, 어머니, 남동생에게 보낸 신의경 지사의 옥중서신 1920년(사진 연동교회 제공)

지사님께서는 어머니의 사망소식도 듣지 못한 채 1년의 형기를 채우고 만기 출소하던 날에서야 어머니가 3개월 전에 운명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커다란 슬픔을 어찌 감당하셨는지요? 그럼에도 지사님은 꿋꿋하게 광복의 그 날을 위해 묵묵히 활동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 길이 먼저 가신 어머님을 위한 효도요, 조국에 힘을 보태는 일이란 것을 일찍이 알고 계셨던 것이지요.

지사님은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의지하며 살아오다 독립운동으로잡혀가 감옥에서도 오매불망 그리던 어머님과의 재회를 하지 못한 채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으니 그 참담한 심정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도 꿋꿋하게 지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을 채찍해 오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부유한 재산을 남겼더라면 다 방종 했을 것이다. 일찍 어머니를 잃은 우리들은 갖가지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어머니가 남기신 것은 자립심과 백절불굴의 정신이

었다.”

일제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정신여학교에 근무하던 어머니와 신 지사님은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행복한 삶을 이어갔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자 신의경 지사님이 겪어야 했던 시대의 아픔이 뼛속까지 느껴집니다. 꿈결에서 조차 그리던 어머니 신마리아 여사님과 신 지사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부디 기쁜 해후하셨길 빕니다.

             최 서 영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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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16:32 2018/08/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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