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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아흔세 번째 편지 - 2018년 7월 10일      

100년 편지

김마리아, 양한나, 최혜순, 방순희, 김효숙, 지경희, 신정완 7분을 기리며 -황인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권 분립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입법부인 임시의정원에는 총 7인의 여성의원님들이 활약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당신들은 모두 항일투쟁에 실질적으로 공헌한 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들이십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최초의 여성의원 김마리아 특집방송(KBS)

국회의 전신인 임시의정원 최초의 여성의원은 ‘김마리아’ 당신입니다. 당신은 항일독립여성운동계의 대모로서 1922년 백범 김구와 함께 황해도 대의원으로 당선되셨습니다. 당시 독립신문은 이 일을 ‘선거계의 신기원’이라는 제목 아래 ‘여자로서 의원에 당선된 것은 우리 선거계에는 물론 이번이 처음일 뿐더러 세계열국을 통하여서도 이것이 아직 몇 째 안 가는 희귀한 일’이라고 기사화했습니다. 이듬해 당신은 임시정부의 내부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결성된 국민대표회의 개막식에서 여성으로선 유일하게 도산 안창호와 함께 개막연설을 하셨지요.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정통성은 상해 임시정부에 있음을 주장하여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지키고자 한 것입니다.

김마리아 당신에 이어 1923년 부산 출신의 ‘양한나’ 당신이 경상도 대의원으로, 그 뒤를 이어 1931년 간호사 출신의 ‘최혜순’ 당신이 임정 국무위원인 남편 김철과 함께 전라도 의원으로 임시의정원에 진출하셨습니다. 이어서 1938년 ‘방순희’ 당신이 함경도 대의원으로, 1941년 광복군 출신의 ‘김효숙’ 당신이 강원도 대의원으로, 1942년 ‘지경희’ 당신이 황해도 대의원으로, 마지막으로 1943년 광복군 출신의 ‘신정완’ 당신이 경기도 대의원으로 임시의정원에 합류합니다.

2대 양한나 당신은 부산지역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사업을 폈고 광복 후에는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에 취임하여 공창폐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3대 최혜순 당신은 상해지역에서 조산병원을 경영하면서 독립자금 마련에도 힘썼지요.    

임시의정원 제34회 의원일동 단체사진. 앞에서 둘째 줄 가운데가 방순희 의원

4대 방순희 당신은 임시의정원에서 가장 오랜 기간(1939~1945) 의정활동을 한 여성의원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당신은 임시정부의 대러시아 외교관으로도 활약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사십 여명의 의원 중 여자의원은 오직 방순희 여성 일인 뿐 이니 만록총중에 일점홍이다. 부녀가 아직도 억울한 경경에 있는 조선 사회이므로 방 여사의 책임은 더욱 크다. 고군분투의 고독감도 있을 것이나 일천만 여성의 후영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용기도 날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5대 김효숙 당신은 한글교사로 임정요인과 교포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는데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도 당신에게서 한글을 배웠다고 합니다. 6대 지경희 당신에 관해서는 안타깝게도 행적이 거의 알려진 바가 없어 독립운동가임에도 아직 정부서훈을 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7대 신정완 당신은 초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해공 신익희의 딸로 오빠 신하균과 함께 광복군으로 맹활약했지요.

바야흐로 임시정부 백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습니다.. 임시정부, 그 중에서도 임시의정원에서 활동한 여성의원 7인을 기리는 일이 기념사업에서 누락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참여를 몸소 실천한 위대한 선구자, 임시정부의 영웅들로 이 나라 건국의 초석을 놓으셨습니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에서야 당신들에 대한 행적을 찾아 기록하고 만 천하에 알리려고 합니다.

19대 국회의원 황인자 올림.

             황 인 자

 

한국외대 초빙교수·제19대 국회의원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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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9 16:23 2018/07/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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