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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 여든 일곱번째 편지 - 2018년 4월 10일      

100년 편지

고조고  장태수열사 자진은  서도장씨의  항일 횃불 -장두원-


 일유제 장태수열사께서는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가자 시종원 부경자리 즉 참판직을 내놓고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 고향으로 낙향하여 27일간 단식끝에 자진하셨다.

 정부는 장태수고조께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의 유품과 유고는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 독립기념관에서 보관하고있다.

 정부는 1999년 한해를 장태수의 해로 정하고 의롭게 사신 그의 충절정신을 기렸다.

장태수 열사는 단식중에 일본을 질타하는 글. 선영들에 자진하게되는 사유. 대한동포에게 드리는 글 등을 남겼다.

 즉 묘영영결문.질왜문에 이어 단식 20일에 이르러 대한동포에 고함을 내놓았다 .

일유제_장태수열사영정_독립기념관소장

 장태수님은 동래부사재직시 일본침략에 대비해 축성할 것을 조정에 건의했으나 재정이 어렵다는 통고를 받자 고향에 내려와 문중회의를 열고 축성에 필요한 자금을 어느정도 조달하여 동래성 축성하는데 일조를했고 이공로로 통정대부를 제수받았다.

 장태수 고조고의 순절은 인동장씨 서도파의 항일 대열에 가열찬 불기둥이 되었다.

 종질 장영직홍문과 교리께서는 을사 7적들이 건내준 참판승진인사를 거절하고 교리가 마지막 임직이라하며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장태수님이 가장 애지중지하던 서도장씨의 종손 이자 만석군인 일송 장현식님은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법무대신하시던 김가진님이 총재로 있는 항일 비밀결사조직 대동단에 가입하고 특히 대동신문 회계책임을 맡아 활약하다가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장현식님은 출옥후 조선어학회의 조선어 편찬경비 7천원중 4천원을 내놓고 활동하다가 검거되어 함흥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출옥했다.

 최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부근에 조선어학회사건 33인의 기념동탑이 높이 15미터로 세워졌는데 이가운데에 장현식님의 당시 활동상이 소상히 기록되어있다.

 일송 장현식님은 항일 문화운동에도 적극나서 동아일보 창간. 중앙고등학교.고려대학교 설립에 거금을 내놓았다. 설립자인 김성수님 보다는 더많은 자금을 내놓고도 뒤로 물러서 있었다.

 일송 장현식님은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피납되었지만 우리정부는 건국포장에 이어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다음해 품격을 높여 추서했다.

 서도장씨는 크게 네대소가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적게는 수천 석이고 .만석군도 두집이 있었다.

 장태수 고조고의 순절은 장씨집안의 애국운동의 불쏘시개가 되어 각대소가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당시만해도 넉넉한 살림에 서울 또는 도쿄유학을 떠난 장씨집안 아들 대부분이 항일학생운동을 했고 국제사회주의를 통한 항일운동도 많이 참여했다.

 필자는 1980년 5.18광주 민주화운동당시 광주사태 보도를 하면 즉결처치한다는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속에 이를 보도하고 kbs에서 해직되었다. 이런 소식등을 기록한 언론. <그일그러진 자화상>이란 자서전 추천사를 쓴 이홍기 한국 방송기자회 회장은 자서전 추천사에서 필자의 광주사태를 보도한 용기는 서도장씨 집안에 도도히 흐르는 피의 산물이며 내력이라고 적어주었다.

             장 두 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졸업

대한일보 기자

Kbs 텔레비젼 뉴스차장.정치부장.문화부장.해설위원 보도본부주간.전주총국장.아트비젼감사.

한국국제문화 협회 국제협력부장 88.서울올림픽 상황실장.

한국문학번역원 상임이사.

현재 아시아투데이 부회장.주필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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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9 18:18 2018/04/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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