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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삼백 스물한번째 편지 - 2019년 3월 21일        

100년 편지

윤동주, ‘십자가’“당신의 시는 바로 지금 나의 삶입니다”-박경석-

 

윤동주

윤동주, 조국해방의 새벽이 깊어가는 1945216. 그는 1944년 일본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스물아홉의 생을 마감하였답니다. 29. 예수님보다 더 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 별이 되었습니다. 그는 독립투쟁의 전선에서 비록 장렬하게 산화한 투사의 삶은 아니었지만, 시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조국해방을 위해 모가지를 드리우며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렸던 분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의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74년이 되었습니다.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된 1945년을 맞이했지만, 그 해방은 분단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이어지는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과 동시에 시작된 고통으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십자가는 여전히 분단된 현실 앞에 걸리어있습니다.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년과 일제식민지에서의 해방과 분단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는 꽃처럼 피어나는 피의 역사였습니다. 그 피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괴로워하는 분단된 조국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전쟁보다 평화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1983년 스물네 살에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다가 행글라이딩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고, 장애인이 되어버린 내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스물아홉보다 더 짧은 삶을 살다가 갔을 것입니다. 걸으면서 비장애인으로 살아왔던 24년과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고 구르면서 살아온 36년을 합치면 스물아홉에 요절한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삶보다 두 배나 더 오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1960년에 태어났습니다. 북에서 월남한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 사이에서 527남매 중 다섯째 쌍둥이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부족함 없이 교육을 받았고, 5·18이 바로 지난 한 달 뒤 해병대를 지원해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제대한 후 대학 2학년으로 복학을 하였고, 198389일 주일날 어머니의 주일날 교회 가라는 말씀을 뒤로 하고 경주 토함산에서 열리는 제1회 전국대학생행글라이딩 대회에 출전하여 행글라이딩을 타다가 추락하여 척수를 다쳐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으로 일제식민지 기간과 같은 36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하반신 마비의 장애를 입은 스물네 살 청년은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어 죽음만을 생각하며 집구석에서 5년을 지냈습니다. 5년은 언젠간 다가올 죽음이 달콤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나의 하반신의 무감각이 내 삶을 지배하였던 세월이었습니다.

고통보다 무거운 무감각한 삶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집 근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 나가서 컴퓨터교육 직업훈련을 받기 시작한 1988년부터였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비장애인으로 살아왔던 삶을 떠나보내야 했고, ‘장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또 다른 고향에서 나는 살기 위한 방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25주년개교기념식_2018.8.9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36년을 지나갑니다. 그 세월은 나에게는 여전히 계속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애해방투쟁의 시간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백골(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노래했듯이,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곳은 나에게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서 나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장애인(Disability Person)이라는 정체성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장애해방운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 지하철로를 사다리와 쇠사슬을 매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를 사다리로 묶고 버텨야 했습니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면서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기어야 했습니다.

70.5%의 장애인이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현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면서 떨어져 죽어야 하는 현실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지만, 보편적으로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부가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거짓부렁입니다.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제3조에 모든 교통수단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권리를 가진다(이동권)”는 동네 아저씨 이름인 이 동권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그렇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놓고 무시하고 지키지 않습니다.

1993년까지 중증장애인들은 초등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제외조항의 교육법 때문에 등록장애인 중 40% 가까이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력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최저임금법에는 지금도 중증장애인은 최저임금 지급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제외조항이 있습니다. 15세 이상의 장애인들 중 60%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살아갑니다. 이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입니다.

한 아버지는 중증장애인 맏아들을 수십년 동안 집에서 돌보았습니다. 자신이 늙고 병들어가자 자신이 죽고 나면 맏아들을 돌보아야 할 자신의 처와 둘째 아들이 걱정되어 새벽에 잠자고 있던 중증장애인 맏아들을 망치로 때려 죽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버지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집행유예로 선처했습니다. 새벽에 아버지에게 맞아 죽어야 했던 중증장애인 맏아들의 존재는 폐기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가족들에게 폐기물 처리의 부담까지 가중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중증장애인들을 폐기물 처리하는 눈물 나도록 잔혹한 조치들을 계속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일제 식민지 때도 먹여주는 대로 조용히 먹고 살면 나름 좋지 않았습니까?”며 다시 물어봅니다. 중증장애인을 감옥 같은 장애인거주시설에 가두고 보호한다고 합리화하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헌법 제31조에 따라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 수준이 ‘0’의 출발선이라면 2019년을 살아가는 중증장애인의 삶은 ‘-100’의 나락입니다. 장애인을 배제하고 격리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권리를 빼앗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2019년의 대한민국 하늘 아래, 중증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함께 완전하게 통합되어 참여하면서 살아갈 날을 위해 장애해방 만세!”를 외칩니다. 나는 윤동주 시인이 건네준 십자가를 지고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면서,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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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尹東柱, 1917~1945)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은 일찍부터 기독교와 신문물을 받아들인 선구적인 한인마을로, 그가 졸업한 명동학교는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다. 1941년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 재학 중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했다.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대표작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십자가’, ‘쉽게 쓰여진 시등을 남겼다. 연희전문을 졸업할 무렵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해방 후 친구와 동생이 유작시를 더해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했다.

                                                                      
             박 경 석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83년 추락사고로 척수장애를 입었다. 1996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조직국장을 시작으로 장애인차별철폐운동에 뛰어들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2003),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2003) 등을 역임하고,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Asia-Pacific Disabled Forum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5회 들불상(2010), 17회 불교인권상(2011), 1회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상(2015) 등을 수상했다. 저서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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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9:17 2019/03/1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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