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쉰 번째 편지 - 2011년 3월 22일        

100년 편지
 

나의 소원을 언제 이루려나? -박인배-


기자 : 안녕하세요, 백범선생님. 인터넷 블로그 기자 박인배입니다.

백범 : 반갑소. 블로그 기자 인터뷰는 처음이외다.

▲ 김구 선생과 나의 소원

기자 : 그동안 언론 환경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고, 그 글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곧 바로 널리 퍼지게 됩니다.

백범 : 내가 바라마지 않았던 “우리 동포 각 개인이 십분(백 퍼센트)의 언론 자유를 누려서 국민 전체의 의견대로 되는 정치”가 하루 빨리 이루어질 것 같은 기대가 생깁니다.


기자
: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에 가장 바라시는 바는 무엇입니까?

백범 : 나의 소원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기자 : 어떤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에 대한 주장은 지금과 같은 세계화의 시대에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백범 : 근래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를 어느 이웃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고 하니,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 할밖에.


기자 : 세계무역이 공정하지 못하게 이루어지는 사례들이 많기는 하지만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국경을 넘어서 확대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백범 : 사해동포(四海同胞)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요.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 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자 : 그 완전한 자주독립에는 예전에 주장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통일된 민족국가가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까?

백범 : 예전이나 지금이나. 철학도 변하고 정치 ?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합니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서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게 됩니다.


기자 : 쏘련이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학설로 여러 민족이 합친 나라를 만들었지만 백 년도 못가서 각기 원래의 민족국가로 돌아갈 것을 예견하셨다고도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남북분단도 위와 같이 전망할 수 있겠습니까?

백범 :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기자 :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리고 끝맺겠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셨으니 전직 대통령님에 해당하시는데요,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백범 : 민주, 즉 백성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것이외다. 이러한 나라에서 국론을 움직이려면 그중에서 어떤 개인이나 당파를 움직여서 되지 아니하고, 그 나라의 국민을 움직여야 합니다.



  박인배

   공연연출가.
   1999년 백범서거 50주기 특별공연 "못다한 사랑 - 백범김구" 연출.

   김구(金九, 1876. 8. 29. ~ 1949. 6. 26.)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교육자·정치인이다.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고, 교육·계몽운동 중 일본 경찰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1919년 이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의원,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총리 대리, 노동국 총판 등을 지냈다.

   1926년 12월부터 1927년까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이후 국무위원을 거쳐 1940년 3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임시정부 법통 운동과,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추진하였다.1949년 6월 26일 집무실인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安斗熙)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장례식은 7월 5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거행되었으며,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백범일지〉가 있다.

※ 위 글에서 백범의 대사는 『백범일지』하권 마지막 장 「나의 소원」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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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7:50 2011/03/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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