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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6 관리자 [100년 편지.58] 두 여인의 책을 읽고 -조영숙-
100년 편지

쉰 여덟 번째 편지 - 2011년 5월 17일        

100년 편지

두 여인의 책을 읽고 -조영숙-


   한국에 있는 독립운동관계 동지이자 선배인 리학효씨로부터 두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와 ‘장강일기’이다. 일본에서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많이도 울었고 고국생각을 많이도 했다. 100년 전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우리민족의 수난을 짊어진 그 고생 앞에 눈물 외에는 말이 없었다. 이럴 수 있느냐고, 말 좀 하시라고 땅을 치고 하늘을 쳐다보며 펑펑 울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인내와 투쟁으로 극복해야할 현실을 생각하며 넘쳐나는 울음을 삼키고 삼키면서, 다지고 다지면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밑줄 친 책들도 없다.

   책 전체가 눈물덩어리지만 지면관계상 몇 부분을 추려 다시 새겨보고 싶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독립투사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 회고록)

▲ 허 은 여사

   “신의주 역사를 빠져나오니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미리 일러주는 듯 낯선 국경 역에서 비바람만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떤 때는 일이 죽나 내가 죽나 둘 중에 하나란 생각으로 날을 보낸다.”, “우리 때문에 어린네가 이렇게 고생한다 하셨다. 손이 시릴 때라 마주 쥐어주시는 손길이 무척 따뜻하고도 고마웠다.”, “심지어는 석주어른 3년 상에 제문까지 검열하며 자기네 마음대로 지우기도 했다. 그때 그 짓했던 일본 놈 앞잡이 형사가 나중에 참의원선거에 후보로 나왔다 . 참 한심한 일이다.”, “학령기에 아이들 하나도 학교에 못 보내고 또 여러 가지가 뜻대로 되지 않아 울적해하던 남편은 늘 속병을 앓았다. 속이 답답하고 거북하다면서 괴로워했다. 내가 헝겊으로 주머니를 기워갖고 소금을 볶아서 뜨겁게 해주면 그걸 늘 배에 안고 살았다.”, “그놈 좀 뚝 잘라서 우리 애 좀 나눠 주었으면 하고 속으로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형제분 아버지 보니까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어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강단으로는 전 조선과 전 만주에서 제일간다던 아버님의 눈에서도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장강일기 (양자강 푸른 물결 위에 실린 한 여성독립운동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 정정화 여사

   “저라도 아버님 뒷바라지를 해드려야 할 것 같아 허락도 없이 찾아뵈었습니다. 아버님”, “별로 배운 것도 없고 나라가 망하기 전에 세도가나 집권자들의 압제를 받으며 억눌려 지내오기만 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끼쳤다면 모를까 이렇다 할 혜택이나 은덕을 베풀어주지 못했던 조국이 이미 숨통이 끈긴 마당에도 그 조국을 찾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일제에 항거하는 모습을 볼 때 진정한 애국자가 따로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아주머니 레더구나. 귀골로 곱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시다. 독립 운동하는 유명한 사람들이레 하나같이 다 이런 험악한 일을 하는 건 아니디요. 기렇디요. 나 같은 놈이나 하는 일인 줄 알았거든”, “백범 같은 분은 여기저기 다니기를 잘하니까 그 헝겁신의 바닥이 남아날 날이 없다. 바닥은 다 닳아 너덜거리니 명색만 신발바닥이고 신발목부분만 성한채로 매달려 있는 꼴이었다.”, “내가 만약 국내에 있다가 독립 운동을 한다는 상해의 독립 운동지사를 찾아갔다고 치자. 내가 아무개입니다 하고 내 소개를 했을 때 그들도 나를 보고 누구시더라 하고 나설 것인가 아니다.”, “서신 연락조차 닿지 못했던 중원대륙에 흙바람이 휘몰아칠 때 손가락같이 굵은 빗줄기가 천형인 듯 쏟아져 내려와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을 때 그래서 서글프고 그래서 쓸쓸할 때마다 늘 생각이 사무치던 곳 그곳이 내 나라였다 내 조국이었다.”, “중원대륙을 헤매며 20여년을 보냈어도 그 사흘만큼 지루하고 딱한 신세는 아니었다. 그렇다 비록 제나라 잃고 남의 나라에 가서 유랑생활을 했을망정 부산 앞바다의 사흘만큼 딱한 신세는 결코 아니었다.”, “우리 집은 셋방살이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야 했다.”


   이 두 책의 저자는 다 여성이다. 독립운동의 제일 밑바닥에서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왔던 그 심경이 읽는 이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사로잡았다. 두 분께서 공통으로 말씀하시고 계신 것은 서간도에서 중원대륙에서 가시밭길을 걸은 그 아픔보다 더 참기 어려운 고통은 고국의 배신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외세와 친일파가 장악한 고국이었다. 그 거꾸로 된 고국에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가슴을 앓았고 그 아내와 어머니들은 자식의 교육과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세월을 보내야했다.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은 이들에게 얼토당토않은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빨갱이’라는 분탕질이다.

   나는 일본에서 역사문화운동을 한답시고 때론 힘에 버거워서, 때론 외로워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두 분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힘을 얻었다. 두 선배님처럼 나 역시 내 아이들(재일 3세들)에게 우리 민족문화와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눈물과 생명을 바쳐 서간도를 개척하듯, 또는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의 ‘거지같은’ 살림을 목숨 바쳐 꾸려나갔듯이, 나도 열심히 우리네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통일을 소원한 선열님들 뜻을 이어 미력이라도 통일에 기여해 나가겠다고 그분들의 뼈아픈 고생 앞에 내 외로움과 눈물을 제물로 올리고 다짐을 드린다.

   100년 편지가 끝나는 2019년엔 우리국민들 모두가 큰 함성으로 ‘독립만세’를 부르고 싶다. 그리고 하루라도 속히 우리민족 남·북·해외 전 구성원이 진정으로 선열님들께 큰 위령제를 올려드리고 싶다.




 조영숙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남. 재일동포 2세와 결혼하여 도일.
  1995년 오오타구 국제교류단체 아리랑회(뒤에 무지개회로 개칭) 설립.
  일본역사왜곡교과서 반대운동. 민문연 도쿄지회 창립 등 역사문화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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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16:01 2011/05/1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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