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예순 두 번째 편지 - 2011년 6월 13일        

100년 편지

중앙아세아 카자흐스탄 땅에 묻혀계신 계봉우 선생에게 -임재경-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의 <백년 편지> 시리즈는 광복운동에 헌신하다 돌아가신 선열들에게 드리는 글월입니다. 하지만 형식이 편지일 뿐 서신 왕래의 기본특징인 교호와 쌍방향의 길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그러한즉 <백년 편지>는 이미 숨을 거두고 저승에 계신님에게 살아 숨쉬는 후손이 피력하는 일방적 상념의 표백(表白)이올시다. 문투는 공손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실제로 편지를 읽는 쪽은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 입니다. 선열의 이름을 가탁하는 것이 외람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못난 짓 같기도 하지만 인간의 표현 방식은 오래전부터 각양각색으로 이루어졌고 이제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하는 언표의 한 장르가 아닌가 합니다.

▲ 계봉우 선생

   언표의 형식을 화두로 삼은 것은 <백년 편지>의 수신자로 모신 계봉우 당신의 존재를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인하는 좋은 기회임을 알리려는 뜻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거니와 임정기념사업회 사무처장 이일선과 저술가 김학민이 ‘계봉우’란 이름석자를 저에게 들려준 한 달 전에 비로소 당신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김필영 강남대학교 교수가 옮긴 당신의 저서 <꿈속의 꿈>(2009) 머리말에 따르면 계봉우 선생께서는 1880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나 그 고장 홍명학교와 함흥의 영생중학교 교사로 일하시다 이 땅이 일본에 강점된 뒤 1911년부터 몇 해 동안 지금 중국 동북부 지린성(吉林省) 지방의 북간도와 러시아 영토 블라디오스독 지역 여러 곳을 전전하며 광복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1919년 상해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북간도의 과거와 현재>, <아령실기> 등 해외의 독립운동 역사관련 저술을 냈고 특기할 일은 김두봉과 함께 조선어 문법연구사업에 몰두하신 점입니다. 선생의 광복운동과 우리말 연구 및 보급 활동은 스탈린에 의한 연해주 조선족의 중앙아세아 강제 이주초치(1937년)이후에도 정력적으로 계속된 사실에 저는 실로 감동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조국 광복을 위해 해외에서 헌신 하신 우리의 조상이 예외 없이 그날그날의 고달픈 삶을 이어가야했고 그 중 상당수는 해외에 까지 마수를 뻗친 일제의 기관원들의 위협과 음해에 시달렸던 점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간 해외에서 이루어진 독립운동의 전모는 아직 소상이 기록되지 못하였고 특히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 러시아에 망명한 선열들의 생활사 내지 운동사는 거의 불모에 가깝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합니다. 돌이켜 보건데 소비에트 붕괴이후 새로 독립한 지금의 중아아시아 여러 나라를 포괄하는 넓은 뜻의 러시아 한인 망명사(亡命史)가 그늘에 가린 것은 반세기에 걸친 동서 냉전과 한반도의 분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는 점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거기다 광복된 조국의 남쪽 정부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가 자신들의 취약한 민족 정통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해외독립운동의 여러 측면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간 강원도에서 자라고 거기서 8.15를 맞이한 저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한글을 몰랐고 학교에서는 일본말만을 쓰도록 강제되었던 점에 견주어 볼 때 비록 스탈린에 의하여 강제로 이주되었지만 중앙아시아의 우리 망명 동포들이 조선(고려)말과 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대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전 계 선생님의 저서를 놓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카자흐스탄에 이주한 조선 망명동포들이 거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논농사 경작을 착수하여 쌀 생산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른 나라 땅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물적 기반을 동포들 자신의 힘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여름 따라 1주일간 중앙아시아 우즈베크스탄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중앙아시아 내륙의 현장을 직접 보고와 선생님께 다시 한차례 글월을 올리겠습니다.


   2011년 6월, 서울에서 불초 임재경 드림




  임재경

 

  언론인, 前 한겨레 신문 부사장.

계봉우 [桂奉瑀, 1880.8.1~1959.6.5] 

   한글학자. 함남 영흥 출생.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했다. 외몽골 치타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지에서 우리말 독본을 내거나 한글을 가르쳤다. 스탈린 정권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해 그곳에서 《이두집해》, 《북방민족어》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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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09:35 2011/06/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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