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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0 관리자 [100년 편지. 15] 고종황제께 올리는 커피 한 잔 -조윤정-
100년 편지

열 다섯 번째 편지 - 2010년 7월 20일        

100년 편지

고종황제께 올리는 커피 한 잔 -조윤정-

[바리스타 조윤정씨가 고종황제께 올리는 글]


   12살짜리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여느 때와 같이 로스터를 돌려 커피를 볶습니다. 학교 가기 싫다고 툴툴대는 제 아이의 나이에 당신께서는 군왕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어리광 대신 한 나라를 어깨에 걸머지고 외로운 길을 가셨던 당신만을 위해 오늘은 커피를 볶겠습니다.


▲ 서양식 의복차림의 고종황제
고종(1852~1919)은 조선의 제26대 왕으로 재위기간(1863~1907) 동안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간섭을 받았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 되었으며, 1910년 경술국치로 조선은 일본에 병탄된다.

   당신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검고도 영롱한 커피 한 사발에 당신은 온갖 시름을 잊었던 것입니까? 커피가 끊임없는 일제의 침입에 나라를 지키고자 고뇌한 당신의 피눈물을 닮았더이까? 아버지 대원군과 아내 중전 사이에서 주체성을 세우기 위해 흘린 당신의 눈물이 고여 한 잔의 커피로 승화한 것은 아닐런지요.

   독일여인 손탁이 당신에게 내민 첫 커피의 맛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들 순종과 함께 덕수궁 정관헌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마셨을 커피는 또 얼마나 향기롭고 이국적 이었을까요. 신분차별을 없애고 서구의 기술과 군사제도를 받아들여 나라의 힘을 기르고자 했던 당신에게 커피는 개화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총칼을 들이대며 강제로 요구된 단발령. 신하 정병하가 당신의 머리카락을 잘랐을 때 떨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커피향기가 배어 나왔을 테지요. 일제는 이를 두고 고종과 순종이 솔선수범해서 머리를 잘랐다고 선포했습니다. 결국 을미의병이 일어났지요. 일제의 이러한 행동에 대항하여 연합의병단에 전달할 비밀조서를 꾸밀 때도 당신 옆에는 한 잔의 커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김흥륙은 흑산도 유배를 당하게 된 데 앙심을 품고 당신을 독살할 요량으로 커피에 독약을 탔습니다. 그토록 당신은 커피를 좋아했습니까?


▲ 고종황제의 가족사진(왼쪽부터 영친왕.순종.고종.귀비엄씨.덕혜옹주)
1918년 1월22일 매일신보에 실린 사진이다.


   역사를 통해 커피는 개인을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길이자 통로였습니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담론이, 혁명이 촛불을 밝혔습니다.

   오늘 진심을 다해 볶은 커피를 점점이 융으로 내려 당신과 마주앉겠습니다. 그 자리에 손가락 불뚝거리며 노동에 몸을 누이는 우리네 민중도 초대하겠습니다. 아직도 여자라서 차별 받는 아줌마들도 함께 합시다. 그렇게 모여 진짜로 맛난 커피 한 잔을 드십시다.


▲ 덕수궁 정관헌. 고종이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곳이다.


   왕 노릇하기 더럽다는 당신의 걸진 입담을 안주 삼아 독약 아닌 보약 같은 커피 한 잔 건배하며 들이킵시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커피 한 잔으로 모든 사람을 왕 대접 하듯 그렇게 오늘도 거룩한 일상이 지나갑니다.


바리스타 조윤정

   글을 쓴 조윤정씨는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기 위해 건너간 영국에서 커피의 매력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학 중 영국의 커피회사에 취직하여 3년 가까이 일하며 커피와 로스팅에 대해 배웠다. 현재는 이화여대와 파주 여성회관에서 커피전문가 과정 및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광화문 신문로에서 '커피스트'라는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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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0 17:50 2010/07/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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