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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9 관리자 [100年 편지.26] 어린이들을 잘 부탁하오 -최종호-
100년 편지

스물 여섯 번째 편지 - 2010년 9월 28일        

100년 편지

어린이들을 잘 부탁하오  -최종호-


   그대들아.

방정환(方定煥, 1899~1931)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의 아동문화운동가이며, 사회운동가, 아동문학가이다.

   올해는 내가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고, 쓴 지 90년이 되는 해이지만 그대들을 차마 ‘어린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내 심정부터 이해해다오. ‘어린이’라는 말은 적어도 어른의 인권만큼, 아니 그보다 더 소중히 다뤄져야 할 인권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말이건만, 지금 그대들의 현실을 보니 그런 내 의도가 민망해져서 그렇다네. 그 말을 만들고 퍼뜨린 사람으로서 마땅히 느껴야 할 책임감과 자괴감을 느끼려는 것이니, 그대들을 ‘그대들’이라 부른다고 너무 뭐라 하들 말게나.

   그대들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대한제국에서 태어나 일제의 식민지에서 삶을 마감했다네. ‘인권’ 얘기를 꺼내긴 했지만 사실 내 나이가 그대들과 비슷했던 시절에는 요즘 말하는 ‘인권’ 같은 것은 없었다네. 어린 사람들은 아직 사람이 덜 된 존재로 보던 시절이었지. 그러니 그 시절을 살았던 내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가르침에 빠져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가르침에서 말하는 ‘사람’이 어린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개념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뿐일세. 그리고 그래야만 그 말이 가르침으로 남는다고 생각했지.

   왜냐하면 내가 살던 당시, 말하자면 일제치하에서 가장 상처 받았던 사람들은 어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네. 물론 어른들도 각자 크고 작은 상처들을 받았겠지만, 어른들에게는 가장 작은 상처도 어린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상처로 남는 법이니까 말일세.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네. 무엇보다 독립을 이루어야겠다고. 번듯한 양복 차려입고 책상 앞에 앉아 동시 몇 줄 꺼적거린다고 찾아오는 어린이들의 세상이 아닐 바에야 독립을 위해 애쓰자고. 1919년 3월 1일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다가 일본 순사에 잡혀 그로부터 총독부의 감시를 받기도 했지만 말이지.

   그렇게 된 것일세. 내가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고, 동시를 쓰고, 처음으로 순수 아동잡지인 월간 ‘어린이’를 창간한 것도 다 일제치하를 사는 우리의 어린이들을 위해서였다네. 그 일들이 주로 문학과 관련된 일들이었던 이유는 일본의 어린이들과는 달리 우리의 어린이들에겐 그들만의 읽을거리가 없었기 때문인 것이고. 일제치하에서 짓밟힌 동심을 위로해줄, 어린이들만의 읽을거리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지. 자네들은 아직 모를 테지만 한 사람의 정서나 가치관은 대개 어린 시절에 만들어지는 법이거든. 그래서 따뜻한 정서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어른이 되기 이전의 자네들을 나라의 미래라 부르는 것이고, 나는 내가 살던 시대의 어린이들이 그러한 나라의 미래로 자라나길 바란 것이란다.

   그러나 오늘, 일제가 물러나면 어린이들의 세상이 오겠거니 했던 나의 생각은 순진한 망상이 되었고, 나라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구나. 지금 그대들은 차라리 옛날 내가 살던 시절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일제치하에서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들의 자유를 구속했던 사람들은 일본의 못된 순사들이나 교사들, 가끔씩 시비를 걸던 일본 학생들이었지 어린이들의 부모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대들에게 그대들의 동무를 밟고 넘어가야할 존재로 가르치고, 국영수가 아닌 그대들의 모든 관심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 학교, 학원, 다른 학원, 또 다른 학원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내밀어 그대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사람들. 기록만 좋으면 선수의 인간성은 상관 안하는 코치처럼, 따뜻한 정서나 올바른 가치관 대신 성적만 따지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대들의 부모니까.

   그래서 나는 그대들을 차마 ‘어린이’라고 부르지 못하겠구나. 제 부모로부터도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그대들을 ‘어린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한 그대들의 날인 ‘어린이날’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 ‘어린이날’은 노동자의 권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절이 단지 고단한 삶에 지친 노동자들이 하루 쉬는 날이 되어버린 것처럼, 국영수에 치인 고단한 그대들이 하루 쉬는 날이 되어버렸구나.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그대들, 따뜻한 정서나 올바른 가치관 대신 명문대 졸업장을 갖게 될 그대들이 만들어낼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그 세상이 끔찍할지라도 그것은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명문대가 요구하는 논술을 위해 전태일의 전기를 사서 읽히지만 그대들이 전태일처럼 살기는 바라지 않는,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그대들의 부모와 그대들의 부모의 가르침에 동의한 모든 어른들의 잘못이다.

   “이 땅의 어린이들을 잘 부탁하오.”. 내 유언은 이미 무색해졌다. 그 유언처럼 무색해진 내가 그대들에게 말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최종호


예비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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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10:55 2010/09/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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