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운동'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1/04 관리자 [100年 편지. 30] 가지 않은 길을 가신 증조부님께 -양인선-
100년 편지

서른 번째 편지 - 2010년 11월 2일        

100년 편지

가지 않은 길을 가신 증조부님께  -양인선-

[발안 독립만세향쟁을 이끌다 순국하신 탄운 이정근님께 증손부가 띄우는 편지]

 

   이른 아침 서둘러 동네 뒷동산에 올라 봅니다. 지난번에 남겨 놓았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산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 탄운 이정근 의사

   사람이 많이 다닌 큰길이 아닌 저 작은 사잇길을 따라가 보면 어디에 다다를까? 어떤 흙냄새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이골 저 골을 오르내려봅니다. 금방 괴한이 불쑥 나타날 것 같기도 하고, 어째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져 서둘러 돌아 나왔습니다. 멋쩍게 뻗은 리키다소나무들 사이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조선소나무 ‘적송’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그저 복에 겨운 낭만의 길이지요.

   문득 시증조부님이 가신 길을 생각해봅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민중들이 서슬 퍼런 일제치하에서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고 있을 시기에, 증조부님이 가신 길은 죽음을 각오한 외롭고, 두렵고 그러나 치열한 삶의 길이었습니다.

   대한제국 궁내부에 봉직하면서 열강 침략의 국제정세를 목도하고 황실이 주도하는 광무개혁의 중심에서 국정에 참여하셨습니다. 1905년 치욕스러운 을사늑약 체결로 국권을 강탈당하자, 사직하시고 고향에 내려와 고향 7개 면을 두루 다니시며 후학을 가르치고 힘을 길러 독립투쟁을 위한 지하조직을 구축하시며 언젠가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분투하셨습니다.

   1919년 1월 고종황제의 승하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을 이끌고 매일 밤마다 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망곡제(望哭祭)를 올리고 저항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드디어 서울에서 3?1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동지들과 결사적인 독립투쟁을 결의하였습니다. 3월30일 발안 장터에 운집한 천여 명의 제자, 동지, 군중들을 이끌고 ‘독립 만세’와 ‘독립가’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였습니다.

   맨 앞에서 일경에 맞서신 증조부님의 그 죽음의 길을 생각해봅니다. 일 헌병의 총칼에 복부를 난자당하여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도 ‘독립 만세’를 외치셨다지요. 지금도 그 자리에 무심히 자리 잡은 발안파출소 앞에 서면 그날의 뜨거웠던 민중의 함성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증조부님! 십여 년 전 일본의 민간단체에서 일제 때 화성 일대에서 자행된 잔학한 수탈과 만행에 대해 사죄하러온 일본인들이 있었어요. 그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의 시할머님(증조부님의 며느리)과 할머님의 친동생 동막골 할아버지로부터 그날의 흰 두루마기를 적신 붉은 피를 회상하며 몸서리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자리에서 “다 지난일인데 이제 무슨 사죄를 청하냐”며 용서한다고 편히 앉으라고 하시던 시할머님의 소박하고 너그러우셨던 사랑이 그립습니다.

   할머님의 말씀처럼 정말 과거역사를 쉽게 잊고 용서 할 수 있을까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하는 데요.

   증조부님! 지난 여름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독립정신 답사단의 일원으로 옛 독립군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 중원 지역을 답사하였습니다. 답사 마지막 날 이만열 단장님의 강의에서 하신 말씀 “역사를 오늘로 산다.”는 문구가 저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역사를 오늘로 살 수 있을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 많은 독립투사들! 그분들이 조국을 떠나 이국땅을 떠돌며 갖은 고생과 수모를 겪으며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 혹독한 식민치하의 감시와 핍박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쓴 저항이 쌓이고 쌓여 ‘민족 독립’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일제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그분들의 희생에 힘입어 되찾은 나라이지만 지금 진정 일제 식민잔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나 한 것인가?

   아직 길은 멀고 무언가 자꾸 꼬여가는 느낌입니다. 오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유산이 일제36년에 의해 얼마나 많이 왜곡되고 단절되고 사라졌는지. 한번 잃은 나라를 되찾고 정상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하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올해 3월, 여러 독립운동단체와 그 후손들과 많은 주민들이 참석해 증조부님의 91주기 추모행사를 가졌습니다.

   오늘도 증조부 탄운 이정근의사 창의탑에 탐스럽게 핀 국화분을 놓으며 순국선열집안의 며느리로서 독립투쟁의 역사를 오늘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2010년 11월 탄운 이정근 의사의 증손며느리 양인선 올림

   

양인선

탄운 이정근의사 증손부. 제6기 독립정신 답사단 참여.

이정근[1856~1919]

   대한제국 궁내부에 근무하던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강탈당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 1919년 순국하기 전까지 15년간 청년들을 가르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독립투쟁을 위한 비밀조직을 구축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결사적 독립투쟁을 위해 제자와 동지들을 규합하여 3월 30일 발안 장날에 맞춰 수천의 주민들을 이끌고 발안 장터 횃불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현장에서 일제 헌병의 총칼에 순국했다. 이후 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고 1994년 대전국립현충원 제2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copyright src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2010/11/04 13:30 2010/11/04 13:30

트랙백 주소 :: http://korea100.kr/tc/?/trackback/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