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체가 만세를 외친 3·1운동 발발 후 불과 반년 만에 바뀌게 된 조선총독. 하지만 그 신임 총독 사이토가 서울에 도착해서 맞게 된 것은 선생님이 던진 폭탄이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신 언론들까지도 주목했던 이 엄청난 사건. 하지만 그 대담한 의거의 주인공이 고령의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놀랬을까요.
최초로 조선총독을 겨냥, 의거의 방법이 폭탄투척이라는 점, 65세라는 고령의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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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TIMES에 실린 강우규 의사 의거 기사 |
하나 같이 놀라운 사실들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의거를 가슴 깊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의 길을 가려는 제게 선생님의 삶은 또 다른 가르침으로 마음 깊이 와 닿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어려웠던 시절, 한의학을 배워 환자를 돌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습니다. 또한 만주에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당신께서 결코 과격하다거나, 한때의 울분으로 폭탄을 던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날의 의거를 있게 한 것입니까. 저는 선생님의 마지막 유언에서 교육자로서 가진 고뇌와 결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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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왈우(曰愚) 강우규 의사 |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1920년 11월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대한의 청년들에게 남긴 유언-
어쩌면 당시 선생님께 중요한 것은 사이토라는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인의 목숨과도 바꿔서 이루고 싶어 했던 그것. 저는 그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깨우침이라고 느꼈습니다.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슴이 울리는 신선한 충격과 감회를 전해주고 싶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제게 선생님은 노인단의 일원으로 의열투쟁을 한 의사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평생을 걸어오신
길이, 마지막으로 택하신 의거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지도, 모두 훌륭한 교육자십니다.
선생님!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아직 배울 것 많은 청년인 저에게 선생님의 삶은 커다란 사표가 됩니다. 아마 제가 목숨을 걸어가며 교육과 청년들을 위해 헌신할 일도 없을지 모릅니다. 다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미래의 주인공인 청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정은 가슴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 설 것인가 고민할 때면 선생님의 의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교사가 된 뒤에도
현실에 안주하거나 게을러지게 되면 선생님을 생각한 오늘의 이 편지를, 그리고 지금의 이 마음을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하고 또 존경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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