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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30 관리자 [100年 편지.34] 丹齋 선생님께..-김진한-
100년 편지

서른 네 번째 편지 - 2010년 11월 30일        

100년 편지

丹齋 선생님께  -김진한-


 

   2007년 한여름, 중국 여순감옥에는 빛바랜 흑백사진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사진 속에는 죄수복을 입고 꼿꼿이 앞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지요. 저는 그 자리에 멈춰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申采浩’ 뚜렷하게 새겨진 이름 석 자가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1936년 2월 21일, 선생님은 두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이곳에서 이승과 작별하셨습니다. 그로부터 74년이 흐른 오늘, 선생님께 편지 한 장 올리려 합니다.

▲ 단재 신채호 [1880.12.8~1936.2.21] 

조선 혁명투쟁을 통하여 직접폭력을 통한 민중직접투쟁을 주장하였던 선생은 5월 대만에서 외국위체위조사건(外國爲替僞造事件)의 연루자로 체포되어 대련(大連)으로 이송, 1930년 5월 대련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旅順監獄)으로 이감, 복역하던 중 뇌일혈로 순국하였다.

   먼저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한국고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김진한이라고 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게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니 벌써 16년전이네요.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선생님에 관한 전기(傳記)를 빌려 보았는데 그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독립투사이자 역사가로서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사신 선생님을 마음속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고 앞으로 역사를 공부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삶은 우리 겨레가 겪었던 고난의 가시밭길 그대로였지요. 선생님은 문필(文筆)의 힘이 무엇인지를 아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천하셨던 몇 안되는 분이셨습니다. 어린 시절 한학교육을 받고 성균관에 입학하였지만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접으셨지요. 당시 선생님이 마주한 조선은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불안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었죠. 그래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주필로 활동하며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친일파들을 통렬하게 꾸짖었으며 우리 겨레의 독립을 향한 열망에 불을 지피셨습니다.

   그러나 총칼로 무장한 일제에 국권을 빼앗길 상황에 놓이자, 안창호ㆍ이갑 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라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셨습니다. 연해주에서는 권업회(勸業會)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서, 만주로 자리를 옮겨서는 역사학자로서 조선사(朝鮮史)를 집필하셨지요. 더욱이 그토록 보기를 염원하셨던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고 ‘집안현을 한 번 둘러봄이 김부식의 고구려사를 만 번 읽는 것보다 낫다’고 단언하셨지요. 저 또한 고구려왕릉을 답사하고 광개토왕비를 가까이서 대할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1919년 3ㆍ1운동의 영향으로 역사적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을 규탄하는 성토문(聲討文)을 기초하면서 임시정부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당시는 독립운동의 노선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었지요. 그런 가운데 1923년 의열단(義烈團)의 요청을 받고 쓰신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들끓게 합니다. 이는 우리 겨레가 겪었던 아픔을 손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셨기 때문일 겁니다. 선생님은 강도 일본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민중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혁명임을 힘주어 말씀하셨지요. 아마 일인(日人)들이 이 글을 읽었다면 머리털이 쭈뼛해지며 두려워 온 몸을 떨었을 겁니다. 그 옛날 당(唐)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황소(黃巢)가 최치원이 보낸 격문을 읽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하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에 필적하는 명문이라고 하겠습니다.

▲ 대련 여순감옥 모습

안중근 의사, 신채호 선생등 많은 독립운동가들께서 숨을 거두었던 대련 여순감옥 모습이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2007년 제3기 독립정신 답사 때 이곳을 답사하였다.

   이후 선생님은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던 중 대만에서 체포되어 대련(大連)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순감옥(旅順監獄)에서 복역하며 순국하실 때까지 붓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평생토록 불의(不義)에 맞섰으며,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여 혁신을 꾀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시대를 꿰뚫는 눈을 가졌습니다. 또 하나 변치않는 사실은 우리 겨레를 정말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가시고 난 오늘, 우리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놓여있습니다. 선생님이 겨레의 독립을 마음속으로 그렸듯이, 우리는 남북이 두 손을 맞잡고 하나가 되도록, 빈부로ㆍ학력으로ㆍ인종으로ㆍ성별로ㆍ나이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열리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어떻게 잘 헤쳐 나갈지 지켜봐 주세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진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구려 후기 대외관계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고대사와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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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0 11:25 2010/11/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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