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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2 관리자 [100년 편지.56] 존경하옵는 항일의사 구천 할아버님께 -김석두-
100년 편지

쉰 여섯 번째 편지 - 2011년 5월 2일        

100년 편지

존경하옵는 항일의사 구천 할아버지께   - 김석두 -


2010년 올해,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열리는 미주한인 역사대회 행사의 하나인 여러 독립운동 선조에게 드리는 역사편지 쓰기대회에서 손자인 저는 자랑스러운 할아버님에게 편지를 쓰게 되어 너무나 가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 체결 후 24세 청년이셨던 할아버지님께서는 우국일념으로 항일투쟁 모의운동을 시작하여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호남 의병대장 정재 이석용 장군과 의기투합하여 군수 조달책을 맡아 전 재산을 독립운동 기금으로 쾌척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1973년 4월 23일 아버지와 장손인 큰집 형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할아버님의 항일 독립운동사인 ‘항일 의사 구천 공 행장록’을 읽고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기억을 되새기며 뜨거운 감동을 받았던 때가 언제나 떠오릅니다.

그 책 권두언을 쓰신 노산 이은상 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의 글 가운데 "의병대장인 정재 공은 전선에서, 구천 선생은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다가 다 같이 체포되어 옥고를 수차례 치렀으며, 마지막 동지인 정재 공이 옥중에서 사망하게 되자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여 장사를 지냈으니 두 사람의 인연은 남달리 두터웠다.

구천 선생은 평생소원인 민족의 광복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여한이 없을 것이요. 다만 우리는 선생이 한결같은 지조를 지키며 한평생을 살다 가신 것을 본받고, 나아가 그 뜻과 행적을 기리 후생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읽어보면 볼수록 이 손자 얼마나 가슴 뿌듯해지는지 할아버님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구천 김형돈 행장록

할아버님! 돌아가신 지 60년이 지나도록 한문으로 된 할아버님의 ‘행장록’을 한글판으로 번역하여 제 후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수년 전에 번역만 마치고 출판을 미루어온 불효를 참회합니다. 아버님의 음덕을 기억하시는 형구 할아버님께서 번역해 주신 할아버님의 이 고귀한 항일투쟁의 유산을 충효의 덕목으로 삼고자 내년 2011년 아버님 탄생 100주년, 할아버님 탄생 130주년을 맞아 후손들이 대가족 모임을 가지면서 출판하여 봉정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시골 거지들이 아침저녁 식사 때가 되면 밥 달라고 동냥 오면 할아버님은 한술도 드시지 않고 그 밥상 찬까지 그냥 그대로 거지에게 주시곤 하셨다는 이야기를 생전에 어머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은 기억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게 울리곤 합니다. 또한 1912년 12월 수감되셨다가 1913년 10월 전주 감옥에서 출옥하신 후 정재 공이 사형선고를 받고 대구 감옥으로 이송 후 1914년 옥사하시자 수백리 길을 걸어서 시신을 상여에 메고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 금당리 할아버님 처소에 은신해 있던 가족들에게 신면 시켜 드리고, 고인의 선산인 전라북도 임실에 안장하도록 동지애를 보여주셨던 할아버님이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바로 벗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참된 우정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정재 이석용의 '옥중 마지막 서한'과 구천 김형돈의 '봉곡 조사의 글'과 묘소 전경사진 - 김형돈 의사는 생전에 왜놈들 사진기로 촬영하는 것을 거부하여 영정사진이 없어, 필자의 부친께서 이 액자를 영정 대신 걸어 놓으셨다고 한다.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에 게재.

할아버님! 제가 미국에 이민 온 지 30년이 훌쩍 넘어 이제 이민선조가 되었으니 중시조의 막중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저에게는 미주이민 후손들의 미국문화 적응과 동화에 대한 문제를 잘 가르쳐야 할 책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와서 오래 살아도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예절과 미풍양속,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부모의 지나친 보호와 사랑과 물질만능, 성의 자유와 문란 등 인터넷 시대의 문명 중독 심화로 도덕이 상실 되어가는 후손들의 초상화가 그려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아버지께서 저를 100리길 읍내 중학교에 진학 시키려는 것을 아시고, 그해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님께서 직접 ‘추구(推句)’라는 한문 시집을 소리 내 가르쳐 주셨던 글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녹죽군자절(綠竹君子節)이요/ 청송장부심(靑松丈夫心)이라/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이요/ 산색고금동(山色古今同)이라"는 글이 아직도 저의 뇌리에 그대로 꽂혀 있습니다. 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사람의 마음은 왜 조석으로 변하는 것일까? 어릴 적 그 의구심이 이제 70 세 할아버님의 나이와 똑같아진 제가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데리고 산을 찾아 오르고 또 오르면서 가르침을 깨우쳐가고 있습니다.

할아버님! 정말 고맙습니다. 할머님과 함께 천상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의 효도 받으시며 영원한 삶을 누리시길 간구 드립니다.

2010 년 10월 미주한인 역사대회를 맞이하여

손자 석두 올림

(2010년 10월 미국 LA에서 열린 미주한인역사대회 행사 중 '독립운동 선조에게 드리는 역사편지 쓰기대회'에서 쓴 글을 100년 편지로 보내주셨습니다.)


       
       김석두

  산악인 및 자유기고가

  구천 김형돈 의사 손

  현재 미국 L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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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 16:29 2011/05/0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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