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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 이른 두번째 편지 - 2017년 9월 5일      

100년 편지

“이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 ‘민국의 길, 자유의 길’을 걸으신 우당 이회영 선생님과 6형제 어르신들께 -홍석천-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1867~1932)

“나는 의식적으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거나 무정부주의자로 사상을 전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우리나라의 독립에 관하여 실현하려 노력하는 나의 생각과 방법이 현대사상의 견지에서 보면 무정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상통하기 때문에 남들이 그렇게 보는 것이다. …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알맞은 제도와 조직과 구조를 생각해야 했고 그 결과 얻어진 것이 이것이니, 나의 이 사상은 일관된 것이며, 나의 독립운동의 방향이라고 나는 믿는다. … 나는 사심 없이 공정한 민족적 양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와 같은 주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무정부주의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무정부주의 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 우리 독립운동의 현실로 보아 (아나키즘이) 가장 실제적인 이론이며 적절한 방법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사실상 모든 운동가들이 자기 사상이야 어떠하든지 이미 무정부주의 자유연합의 이론을 다 같이 이대로 실행하고 있다. 기미년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단체와 조직이 생겼지만 그에 소속된 운동가가 자신의 자유의사의 결정에 의지하지 않고 강제 명령에 무조건 맹종하여 행동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런 단체가 어디 있는가? …”

우당 선생님, 그리고 여섯 형제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저는 2017년의 반쪽짜리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홍석천입니다. 오래전부터 역사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인간과 시간, 공간의 흐름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역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역사란 지난날 일제에 의한 피압박민족으로서의 우리가 다난했던 그 시절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겨내고 새 시대를 열고자 갈망했던 사람들이 살아내셨던 역사를 말합니다.

이는 곧 선생님께서 육십 평생을 '자유의 길'에 헌신하셨던 그때 그 시절이었습니다. 아니 선생님을 비롯한 여섯 형제분들께서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하여 ‘민국’과 ‘자유’를 위해 혼신의 힘으로 투쟁하셨던 아주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경의를 거듭거듭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아주 존귀하신 일생이시자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제가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1867~1932)'이라는 선생님의 존함을 처음 접하게 된 때는 6년 전 2011년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이자 첫 해외답사였던 중국 동북지방 답사의 길에서 선생님의 흔적을 마주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존함과 흔적을 처음으로 마주하였던 곳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끔찍한 장소였습니다. 지난 시절 일제가 우리 선조들과 중국민들을 탄압하고 고문하기 위한, 아니 실제로 자행했던 비극의 공간인 뤼순감옥이었던 것입니다.

뤼순감옥의 이회영 선생 소개 패널

정말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충격과 슬픔에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안중근 의사, 단재 신채호 선생님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우리 선조들에 이르기까지..... 딱 100여 년 전에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에서 선생님의 존함을 처음 마주한 저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안중근 의사와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존함만큼은 2011년 7월의 그 여름날에 다른 곳도 아닌 선생님께서 순국하신 그 감옥에서 처음으로 마주하였으니 역사학도로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한 인민(人民)으로서 정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에 저는 그 이후로 선생님께서 펼치신 항일독립투쟁의 궤적을 제 나름대로 추적해보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선생님을 비롯한 6형제분들의 항일의 역정 또한 함께 기억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선생님과 선생님을 비롯한 6형제분들의 신산스러웠던 항일독립투쟁의 궤적이 정말 상상 그 이상으로 놀랍고도 대단하신 업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라는 망국의 현실에 형제들 앞에서...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가족에 대하여 말하기를 대한 공신의 후예라 하며, 국은과 세덕이 이 시대의 으뜸이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는 나라와 더불어 안락과 근심을 같이할 위치에 있다. 지금 한일합방의 괴변으로 인하여 한반도의 산하가 왜적의 것이 되고 말았다. 우리 형제가 당당한 명문 호족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히 도모한다면 이는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가?”

“나는 동지들과 상의하고 근역에서 운동하던 제사를 만주로 옮겨 실천코자 합니다. 만일 다른 해에 행운이 닥쳐와 왜적을 괴멸하고 조국을 광복하면, 이것이 대한 민족 된 신분이요, 또 왜적과 혈투하시던 이항복 공의 후손된 도리로 생각합니다.”

하시며 설득 끝에 6형제 모두 서간도로의 일가 망명을 결심하시고, 압록강을 “압록강 물이야 어느 땐가 다하련만 / 내 가슴 끓는 한은 그칠 기약조차 없어라.” 라고 심경을 표현하면서 건너신 뒤 일가의 거의 모든 재산을 쏟아부어 만주 땅에 무장독립투쟁의 씨앗 ‘신흥무관학교’를 심으신 선생님...

“국경을 무사히 넘어 도착하시니 상하 없이 반갑게 만나 과세도 경사롭게 지냈으나, 부모지국을 버린 망명객들이 무슨 흥분 있으리오. 그러나 상하 없이 애국심이 맹렬하고, 왜놈의 학대에서 벗어난 것만 상쾌하고, 장차 앞길을 희망하고 환희 만만으로 지내가니 차호라.” - 이은숙,『서간도시종기』

꿈과 눈물의 터전이었던 서간도를 불꽃같은 열정으로 항일독립전쟁의 최전선으로 일구신 후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한다.” 라는 대한민국임시헌장(1919) 발표와 임시정부 수립에 함께 하시어 ‘제국에서 민국으로’ 의 길을 여신 선생님...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규정짓는 것이지 수단과 방법이 목적을 규정할 수 없다는 확고한 견지에서 볼 때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그 민족의 해방과 자유의 탈환이다. 그 운동 자체가 해방과 자유를 의미한다.”

“… 동서고금을 통해 해방운동과 혁명운동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운동이고 운동가 자신들도 자유의사와 자유 결의에 의해 수행하는 조직적 운동이었다. 그 형태는 어떠하든지 사실은 다 자유 합의에 의한 조직적 운동이었다.”

라고 스스로 정리하시며 환갑을 바라보는 연세에 ‘자유연합’의 길, ‘아나키스트(anarchist)’로서의 의열투쟁의 길에 들어서시어 자유해방의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하시다가 결국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뤼순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신 선생님...

그리고 이러한 ‘민국의 길, 자유의 길’ 위에서 비록 자신들의 삶의 여정은 너무나도 신산스러웠지만 도리어 그 삶이 역사의 빛이 되신 이건영(李健榮, 1853~1940), 석영(石榮, 1855~1934), 철영(哲榮, 1863~1925), 시영(始榮 1869~1953), 호영(護榮, 1885~1931?) 어르신들.....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Noblesse Oblige’의 표본이자 모범이 되셨습니다.

우당 6형제의 영정

“동서 역사상에 국가가 망한 때 나라를 떠난 충신 의사가 수백·수천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당 일가족처럼 6형제 가족 40여 명이 한마음으로 결의하고 일제히 나라를 떠난 일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장하다! 우당의 형제들은 참으로 그 형에 그 동생이라 할 만하다. 6형제의 절의(節義)는 참으로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될 것이니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라고 하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말씀대로 선생님과 다섯 분의 어르신들은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 남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신 우당 선생님과 다섯 형제 어르신들께 이제라도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이렇게나마 변변찮은 편지로 고백하고자 합니다.

더군다나 우당 선생님께서 탄생하신지 150주년이 되는 올해 8월 16일 우당 선생님을 비롯한 6형제 어르신들의 항일 역정을 주제로 한 ‘민국의 길, 자유의 길’이라는 제목의 특별 전시를 그 누구보다 감명 깊게 본 저로서는 이제는 더 이상 무관심과 망각에 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와 기록을 공부한다는 학도로서의 양심과 책임에 따른 것임을 감히 제가 우당 6형제 어르신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관심과 기억의 차원을 뛰어넘어 선생님의 숭고하신 삶, 선생님을 비롯한 6형제 어르신들의 그 높고도 높은 절의(節義)와 신념(信念), 정신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우당 선생님께서 서른의 나이에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신 것처럼,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예순여섯의 ‘일생(一生)’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저 또한 고민하고 제 나름의 ‘일생’을 개척해나가겠습니다. 지난날 선생님들께서 지향하시고 만들고자 했던 ‘민국의 길, 자유의 길’을... 이제는 제가 그 길을 기억하며 새롭게 열어나가겠습니다.

“세상에 풍운은 많이 일고 해와 달은 급급하게 사람을 몰아붙이는데 이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우당 이회영 선생님 탄생 150주년을 맞은 2017년 8월 24일에

홍석천 올림

“Historia Magistra Vitae”

             홍 석 천

 

원광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제12,13기 독립정신 답사단원

제14기 독립정신 답사단 기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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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0 15:16 2017/08/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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