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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 예순 여덟번째 편지 - 2017년 6월 27일      

100년 편지

교정을 거닐며 윤동주 시인에게 -이동민-


윤동주 선배에게

시인인 내 아내는 올해가 윤동주 탄생 100주기라고 몇 번을 강조하더니, 급기야 일본 여행을 떠났네요. 선배의 행적을 더듬는 시인들 여행에 함께 다녀오겠다는 거였어요. 선배가 다니던 리쿄대학이며, 선배가 감금되었던 후쿠오카 형무소 등을 돌아보고 오겠다고 휙 떠난 아내. 가족들을 돌보고 보살필 생각을 하지 않고, 윤동주 선배 시인만 마음에 품는 아내가 한편으로 야속하더군요.

그런데, 인연의 끈이란 무서운 법인가 봐요. 국문학도인 아내와 결혼을 해서 살면서도 윤동주 선배에 대한 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내가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 무쩍 바쁘게 활동을 하더군요. 여기저기 행사로 분주하고 글을 발표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어요.

윤동주의 시비

내가 대학 시절에 교정을 거닐면서도 1분도 윤동주 선배의 시비 앞에서 윤동주 시인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아내는 그 윤동주 선배를 만나겠다고 일본 여행을 가버렸어요. 혼자 버려진 듯 한 기분이었죠. 나는 혼자 옷을 차려입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교를 산책하기로 했어요. 일요일이라 한산하더군요. 모처럼 오랜만에 거닐어보는 교정이었어요. 핀슨 기념관 앞에 윤동주 선배의 시비가 있더군요. 그곳에 찾아가 아내가 좋아하는 윤동주 선배시인을 생각해 보았어요.

핀슨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내가 모르고 있던 윤동주 선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선배의 기념관은 그리 넓지 않았어요. 선배가 사용했다는 책상과 연필, 필통, 가방과 모자가 전시되어 있었죠. 유리 상자 속에는 선배의 유고 시집이며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고요. 그 곳에 적혀 있는 설명 재료들을 읽고 또 읽고 책상에도 앉아보고.... 거기서 두어 시간을 머무르면서 선배를 생각했어요. 가슴이 아렸어요. 윤동주 선배는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라는 부친의 권유를 저버리고 연희전문 문학부에 지원했다죠? 1937년 민족말살 정책이 한창일 때였고요. 문학이 좋아서 시와 산문을 썼고 학교 교지, 문예지와 조선일보에 발표했다고요. 선배가 시를 쓴 것은 북간도 용정에 은진중학교 때부터였죠?(18세 무렵)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로 편입했으나 그는 6개월 만에 자퇴를 했고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학교에 휴교령이 내린 까닭이었 다네요.

핀슨 기념관에 와 보니, 1937년부터 1941년 연희 전문시절이 동주 선배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설명하네요. 당시 선배가 기거하던 기숙사로 쓰였다는 건물에 핀슨 기념관이 세워졌고요. 선배를 생각하며 가슴 아리지 않을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요? 한국인들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선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해요. 러시아뿐이겠어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선배를 추모하고 추앙하고 있을 거예요. 선배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는 북간도 명동 촌과 무덤이 있는 용정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요. 언젠가 아내가 그곳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때는 나도 함께 가서 둘러보아야겠어요. 선배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시인의 자리에 놓여있네요.

윤동주 선배는 문학을 사랑해서 시를 쓰고 산문을 썼다지요. 그리고 연희 전문의 문예부에 들어가 활동을 하면서 ‘문우’라는 문예지에 ‘새로운 길’과 ‘자화상’ 이라는 시를 발표했고요.. 그리고 조선일보 학생란에 ‘달을 쏘다’, ‘아우의 인상화’, ‘유언’ 이라는 산문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선배는 졸업 때까지 문학에 심취하여 블란서의 지드와 말라르메에 빠지고 프랑스 문학을 혼자 공부하기도 했네요. 선배는 1941년 12월 27일에 연희 전문을 졸업할 무렵, 졸업을 기념하여 우리말 시집을 내려하셨더군요. 19편 중에 몇 편('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 ....)은 일본에 저항하는 표현이 짙었네요. 그뿐 아니라 우리말 말살정책이 한참 고조되어 있는 때에 우리말로 된 시집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겠어요.

윤동주가 육필로 써놓은 시집-정병욱에게 맡겨져 나중에 유고시집의 재료가 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 시집 속에서 윤동주 선배는 다시 불사조로 살아나셨군요. 한국인들 중에서 윤동주 선배를 사랑하지 않는 시인은 거의 없을 거예요. 시에 관심이 없는 나 같은 공학도들에게도 윤동주 선배의 시는 마음에 감동으로 스며올 것 같아요.

시 한 구절 한 구절에 가슴 저려하면서 시를 짓느라 밤을 설치는 아내가 이제 이해될 것 같다. 그리고 시를 사랑해서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목숨을 잃은 윤동주 선배를 연세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랑합니다. 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를 사랑하고 고집스럽게 한 길을 갔던 선배의 삶에 감동이 느껴져요. 국가에서 당신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이유도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시 사랑에 고개를 숙입니다. 윤동주 선배님”

2017년 3월.

까마득한 후배 이 동민 올림

             이 동 민

 

연세대학교 졸업, GS건설 상무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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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12:33 2017/06/2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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