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여덟 번째 편지 - 2010년 4월 24일        

100년 편지

백범 김구 선생님께  -이영후-

[MBC 정치드라마에서 백범 역을 맡았던 이형후가 올리는 편지]


   선생님,

   올해는 우리 임시정부가 탄생한지 91주년 되는 해이고 앞으로 2019년이면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 마구 헤 짚고 다니지 아니 하고 거룩한 발자국만 남기신 그 마지막 끝 날도 이제는 61 주년이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마음을 모아 이렇게 굳이 날 수를 헤아려 보는 뜻은 평생에 방략<方略>을 가지고 살아가신 선생님의 큰 뜻의 날 수들이 이미 오늘을 사는 저희들에게 그 어느 것 보다도 소중하고 정확한 나침반이 되어 있기에 다시 짚어 보는 것입니다.
 

▲ 백범 김구

   1896년 2월, 나라는 있으되 방략이 없었고, 허울만 있으되, 그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왕권 대신, 21살의 젊은 나이로 혼신의 용기를 가지고 국가의 책무를 스스로 짊어 지셨던 안악군 치하포의 방략, 1906년 학교<해서교육회>를 세워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힘이 없는 권력은 허상이다>라는 방략으로 평생을 노도처럼 살아오신 생님의 행적이 이 시대에도 변함없는 표준이 되어 계시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에 말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셨습니다. 모두가 다 아전인수 격으로 선생님을 농락하고 이용 했을 뿐, 소위 말하는 전투적인 사상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예언자의 가시 밭 길, 고난의 험한 역정이셨던 걸 저희들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안두희가 선생님 가슴에 총을 겨누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을 때, <쏘아라, 이놈!> 하시면서 호통 치시던 선생님께서는 이미 그 모든 걸 소상하게 짐작하고 계셨던 걸 저는 압니다. 이 세상에서, 정녕 말로 만 되는 것이 있었더냐? 즉각적이고도 단호한 행동만이 그 소임을 다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나를 굽히고, 나를 누이는 희생, 그 절망처럼 보이는 거룩한 희생이야말로 그 어느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다는 영원한 진리를 말씀하시고 계신 것 말입니다. 요괴 인간의 총뿌리 앞에 가슴을 헤쳐 보였던 백범, 독살스런 군중 앞에 몸을 드러내었던 간디, <다 이루었다>로 예언을 실천한 구원자의 그 치열한 사명만이 오늘도 우리의 변함없는 표준이며, 이것 말고, 어디서, 누구에게, 또, 그 무엇을 가지고 이 지고지선의 덕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그렇게 우려하시고 반대 하셨던 분단과 반목, 정파적 이익이나 권력의 무자비한 전횡뿐만 아니라, 그 어느 것 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인간 타락의 근원적인 문제가 오히려 더 두렵고 어렵다는 사실을 먼저 보셨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의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반상관념에 찌든 우리들 의식 속에서, 백정보다도 낮은 천민을 자처하신 백범선생님, 저희가 지금, 비록 반대와 대결로 자중지란의 곤죽을 쑤고 있기는 합니다마는 위대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위대한 적도 있다는 선생님의 표준이 오늘도 저희들의 무모한 삶 속에 명철한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는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실현되기를 원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 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를 낙으로 삼기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쏟을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몸소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과거가 아닌 미래 속에 살고 계시면서, 죽어도 썩지 않을 예언자의 표상으로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생생하게 살고 계십니다.이제 비록 30년 보다 좀 늦기는 하였지만 선생님이 소원을 다시 기리며<꿈을 따르는 자에게 월계관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놀라운 꿈을 향하여 다시 또 한번, 마음을 크게 고쳐 먹겠아오니 심려 놓으시옵소서.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바라보면서, 종종 뵈올 것을 기약드리며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영후

전통공연예술기능재단 이사장

 

김구(金九, 1876.8.29. ~ 1949.6.26.)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교육자·정치인이다.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고, 교육·계몽운동 중 일본 경찰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1919년 이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의원,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총리 대리, 노동국 총판 등을 지냈다.
   1926년 12월부터 1927년까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을, 이후 국무위원을 거쳐 1940년 3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임시정부 법통 운동과,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추진하였다.1949년 6월 26일 집무실인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安斗熙)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장례식은 7월 5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거행되었으며,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백범일지〉가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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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0 14:35 2010/05/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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