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다섯 번째 편지 - 2010년 4월 19일        

100년 편지

이재유 선생에게  -김경일-

[이재유의 탈출을 도운 일본인 순사 모리다의 편지]


    이재유 선생,

▲ 이재유 선생

   1934년 4월 13일 밤 작은 전등이 매달린 어두운 복도 저쪽에서 희미하게 잠깐 드러났다 사라져버린 당신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당신이 처음 이곳 서대문경찰서로 잡혀 온 것은 매섭게 추운 1934년 1월의 어느 날이었지요. 우리 경찰서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조선인 사상사건 관련자의 한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당신에게 내가 호감을 갖기 시작한 것은 나의 조 인 동료들에 의한 혹독한 고문에 대하여 당신이 보인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사상범에 대한 취조와 고문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인간 지옥입니다.  “벌거벗긴 자와 권력을 믿고 뻐기는 도살자 사이의 처참한 투쟁의 장”에서 나는 아귀와 같은 집요함과 잔인함을 가지고 동족을 학대하는“야수적인 폭력의 지배”에 몸서리를 쳤습니다.어릴 때부터 일본 사회의 밑바닥에서 자랐던 나는 바이런이나 셀리, 보들레르, 하이네, 쉴러 등을 읽으면서 감상적 낭만주의자가 되었고, 천황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이름 아래 국민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괴물로서의 일본 국가의 하수인으로 일하는 동료 조선인들을 연민과 경멸의 이중 감정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유치장에서 나는 많은 조선인들을 보았습니다. 생계가 어려워 절도나 강도, 사기로 들어온 하층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족과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동족을 박해하고 배신하는 지식인들의 이중성과 위선도 보았고 사상에 대한 헌신을 내세우면서도 권력의 위압과 신체에 대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신념을 저버린 운동자들의 나약한 목소리와 자기변명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들과 달랐습니다. 당신의 깊은 통찰력과 타오르는 정열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소리없이 흐르는 큰 강”을 연상시켰고 굳건히 “대지에 뿌리박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조선 혁명과 민족 해방에 대한 열정이 나의 조국인 일본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는 당신의 인격과 지성, 그리고 인간성에 점차 빠져 들었으며, 당신이 말하는 인간의 궁극적 자유와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스산한 봄 날씨에 창살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은밀히 나눈 많은 이야기들은 “가난한 나의 머리 위에 머문 별들의 반짝임”과도 같이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당신에게는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되었던 서대문경찰서에서의 80여 일은 나에게는 깨달음과 반자기성찰의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의 순사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친구로서 나는 당신이 자유를 찾는 일에 기꺼이 함께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이 나의 조국에 해를 끼치고 배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정신의 자유와 교류를 위한 우리들의 연대와 우정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의 믿음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은 나처럼 행동한 다른 많은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1910년 초반에 뤼순감옥의 간수인 일본 육군 상등병인 치바 도히치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당신의 동족인 안중근으로부터 받은 인격적 감화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바가 있습니다. 1930년대 초반 함경남도 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 일하던 나하고 이름이 같은 모리다(守田), 그 뒤를 이어 마에다 긴사꾸, 이소가야 스에지 등의 일본인들이 노동의 자유와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헌신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서대문경찰서로부터 탈주한 당신을 숨겨 준 경성제국대학의 미야께 시카노스케 교수는 그로 인하여 ‘국립’대학의 교수 자리마저 빼앗기고 투옥되고 석방과 동시에 일본으로 추방당했다는 기사도 얼마 전 보도금지가 해제된 신문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나의 경우와 비슷하게 이들 일본인 모두에게는 민족과 국가의 벽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공명과 피압박 민족의 비애에 대한 공감, 그리고 인간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공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내 삶이 좌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결코 실패하지 않은 삶을 살아 왔고 이러한 점에서 지난 1934년 봄의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나의 앞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이어지는 한 식민지 조선에서나 제국주의 이후의 일본에서도 정의와 연대와 해방의 그 날은 멀지 않을 것입니다.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 교수
저서 <일제하 노동운동사> <이재유 연구>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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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34년 이재유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의 탈출을 도왔던 일본인 순사 모리다의 시선으로 김경일 교수가 쓴 글이다. 이재유는 일제에 철저한 비타협 투쟁으로 일관하다 옥사한 대표적인 항일 노동운동가이며, 경성트로이카 최고 지도자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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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9:45 2010/05/1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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