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열 일곱 번째 편지 - 2010년 8월 3일        

100년 편지

부강하기보다는 아름다운 나라를... -김별아-

[소설가 김별아씨가 쓴 ‘후손들에게 보내온 백범의 편지’]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 백범 김구(1876.8.29~1949.6.26)

독립운동가. 정치사상가. 1926년 12월부터 1927년까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이후 국무위원을 거쳐 1940년 3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내가 머무르는 이곳 하늘의 집에 들어온 지도 벌써 반백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생전에 간절히 꿈꾸었던 것처럼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있고 구속과 착취와 폭력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깨끗이 마당을 쓸고 열심히 창문을 닦는 문지기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신명을 모다 바쳤던 동지들의 영혼이 함께 있어 외롭거나 적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집을 지상에 짓고자 했던 소망을 못다 이루고 홀연히 떠나온 것이 그대들에게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못난 늙은이의 소망을 그대들이 꼭 실현하시리라는 것을 믿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접어둡니다.

   오늘 뜰 안에서 휴지를 줍다가 문득 헤아려보니 올해가 바로 극악무도한 일본제국주의의 마수에 국권과 인권을 빼앗긴지 꼬박 100년이 되는 해더군요. 불평등한 강화도조약 이후 이십여 년을 야금야금 뜯어 먹히다가 마침내 합병이라는 가증스런 이름으로 호랑이 아가리에 통째로 삼켜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를 ‘썩어진 민족’이라고 자탄하는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큰 분노와 통한을 느꼈는지요! 하지만 그대로 비탄 속에 주저앉아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찬바람이 휘부는 늦가을 밤에 뜨거운 심장을 지닌 동지들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광복전쟁을 벌일 채비를 했습니다. 아무리 길고 지난한 싸움이라도 끝끝내 포기할 수는 없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로운 백성의 나라, 한두 영웅이 아닌 인민 전체의 나라를 만들자는 우리의 결의는 마침내 1919년 3.1 만세운동의 피와 눈물을 거름삼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우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통치에 ‘감읍’해 ‘박멸’된 줄만 알았던 민족정신이 펄떡펄떡 숨 쉬며 살아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목이 베어지고 팔이 떨어져나가고 혀가 뽑히면서도 만세를 불렀습니다. 젊은이와 늙은이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조선의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세의 목청을 돋웠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온전히 그것입니다. 무엇으로도 훼손시키거나 능멸할 수 없는 우리의 자존입니다.

   비록 우리 손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광복군의 참전을 준비하던 중에 일제의 항복에 의해 벼락같은 해방을 맞게 되었지만, 그리하여 국제질서를 명분으로 내세운 강대국들의 이전투구에 조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또 다른 비극을 겪게 되었지만, 나는 목숨이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가 영웅이 되고 주인이 되는 나라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가 지상을 떠나온 후 오십여 년 동안 전쟁과 독재 등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 후손들의 투쟁을 지켜보면서 그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고부동해져만 갔습니다.

1945년 11월 23일 김포비행장을 통해 귀국하는 백범 김구. 뒤로 흐릿하게 당시 하지 미군정 사령관이 보내온 C-47 수송기가 보인다. 당시 미국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김구 일행은 임시정부 주석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후손들이여, 나는 오직 그대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랍니다. 부강하기보다는 아름다운 나라, 스스로를 지키고 드높이는 동시에 남들까지도 행복하게 하는 나라를 만들 때까지 아무러한 고통이 그대들의 현실을 곤고하게 할지라도 결코 희망과 투지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큼만 공부하고 싸우고 꿈꾸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현명함과 우둔함, 귀함과 천함, 가난함과 부유함, 강함과 약함을 다 떠나 나만큼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이자 가장 평범한 사내인 범부를 자청하였기에, 그대들 중의 어느 누구도 나보다 못할 리 없습니다. 아니, 그대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더욱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후손들이여, 나는 이곳에서 항상 그대들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대들도 아주 가끔씩은 그대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를 기억해 주세요. 그 순간 우리는 백 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만나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소설가 김별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소설 <힌 문 밖의 바람소리>로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미실>, <영영이별 영이별>, <백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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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3 17:27 2010/08/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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