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여섯 번째 편지 - 2010년 4월 20일        

100년 편지

존경하는 주기철 목사님께 -이근복-

[이근복 목사가 띄우는 편지]


   아직도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하여 우리 사회가 성공만능에 빠져있고, 한국교회조차도 경쟁과 탐욕에 탐닉하는 사회질서를 맹종하는 분위기에서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30년 가까이 사역하고 있지만 여전히 방황하는 저는 오로지 십자가 신앙으로 사시다 순교하신 목사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목사님이 가족 앞에서 야비하게 고문당하며 갈등하신 것에 비하면 제 고민은 별것 아니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때 졸업하고 노동자선교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는데 2학년 때 신학자에 대한 꿈이 생겨서 방황하였고, 가난하게 사신 어머니께서 저 때문에 동생들이 운동권이 되었다고 원망하실 때,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목사님이 순교하시며 보수하시려는 것은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기독교진리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종종 목회성공과 교회성장을 부러워하는 것은 목사님처럼 투철하지 못하여, 맘몬신이 우상이 되었고 자기성찰과 회개에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지금이야말로 목사님이 지니셨던 건강한 보수신앙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35년 전, 저는 군사정권의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성서적이라고 믿고 기독교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종교의 힘을 극대화하려는 정교분리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무분별하게 지배권력에 밀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꿈꾸는 기득권층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보았습니다. 또 시장자본주의가 마치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되는 것처럼 신봉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눈감지 않으려고 자신의 개혁에 애써왔지만 이제는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아마 제가 적당히 타협하여 제 자리를 보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생명과 진리의 길, 평화의 길이라고 강조하신 목사님의 설교문을 읽고 보니, 저 역시 어느덧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고 번영의 길을 선호하며 슬그머니 따라가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비워 인간의 비천한 처지로 내려와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높이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무딘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때때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직접 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라고 분명하게 인식하셨던 목사님과는 달리 저는 성직자라는 자의식이 부족합니다.


   목사님은 마지막 유언으로 당신의 시신을 평양 돌박산에 묻어달라고 하심으로 남쪽 사람으로서 북쪽에 시체라도 묻어 둠으로써 남북화해의 상징이 되시려고 하셨습니다만, 저는 한국교회가 민족분단과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흔들리는 사회를 영적인 힘으로 다잡고,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추동해낼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지혜나 치열하게 추진하는 힘도너무나 부족합니다.


   목사님은 ‘기독교는 여자 해방의 선구자이다’라는 글을 쓰시고 차별당하던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는데, 80년대에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일한다고 노력하였지만 돌이켜보니 어설프게 선교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을 삶의 주인으로 세워야 하고, 한국교회가 이런 문제를 끌어안고 공공성을 발휘하여 문제해결의 책임있는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깊은 성찰없이 대충 선교활동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이 듭니다.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한 교권주의자들은 목사님을 산정현교회에서 내몰고 갖가지로 회유하고 핍박을 가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그에 못지않게 권위적인 교권주의자들은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힘으로 자기들의 이익을 관철하고 있지만, 목회자운동을 통하여 어거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거기다가 저를 비롯한 50-60대 목회자들이 각 교단의 책임적인 위치에 있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한 2010년에 저부터 목사님의 순교정신을 간직하고, 맘몬우상과 어둠의 세력이 판치는 이 땅에서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분발함으로써, 목사님이 온몸으로 사랑하셨던 한국교회가 사랑과 존경심을 회복하길 간절히 소망하며 제 편지를 맺습니다.


이근복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 원장

 

주기철(朱基徹, 1897년 11월 25일 ~ 1944년 4월 21일)은 개신교 목사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종교적 항일을 하였다. 주기철은 기독교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계명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살아있는 일본왕이나 그 시조를 우상화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라는 소신을 지키고자 하였다. 일제의 지속적인 신사참배 강요에 조금도 굽히지 않고 교도들에게 신사참배 거부를 설교하다, 1940년 7월 불경죄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옥고를 치르던 중 1944년 순국하였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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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9:46 2010/05/1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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