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열 세 번째 편지 - 2010년 7월 6일        

100년 편지

약산 김원봉 선생께 -편집자-

[현재를 살아가는 대학생이 약산 김원봉 선생께 띄우는 편지]

제가 살아온 20여 년 간 남과 북이 하나였던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당시 이미 남과 북은 분단된 지 수 십 년이 지났고 여전히 남과 북은 갈라져 있습니다.

▲ 약산 김원봉

최근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있으며, 남북의 전쟁 가능성까지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과연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이 정말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문득 남과 북이 나뉘지 하나였던 시대를 살았고, 해방 공간에서 남과 북의 이념적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겪어냈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 역사 중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아갔던 당신의 눈과 신념 속에서 우리의 현재를 올바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현명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전환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만연한 것이 우리 교육 현실이고, 당신이라는 존재는 사실상 교과서에 ‘의열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몇 줄 소개된 것이 전부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당신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 때는 당신이 그저 당당하게 일제에 맞서 총을 겨누고 그들을 처단한 멋진 민족투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광복 직후의 역사를 공부해 나가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당신의 발자취에서 무언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미치도록 원하고 원하던 광복을 손에 쥐고 한반도로 귀국한 당신의 눈 앞에 펼쳐진 당시의 현실은 얼마나 실망스러웠을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당신이 남한을 떠나 북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우리 앞에서는 새로운 현실로써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남과 북이 단순한 이념의 차이를 넘어, 서로 ‘다르다’는 생각, 즉 정신까지 두 동강 나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늘에서 보기에 작은 땅덩어리에 줄 하나를 그어 놓고 왕래는커녕 총 들고 맞서고만 있는 이 상황이 어떻게 보이는 지요? 우습지는 않으십니까? 당신이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 부탁하여 문서화한 <조선 혁명 선언>의 큰 테두리는 ‘민중 직접 폭력 혁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분명 빼앗긴 우리 조국을 되찾는 과정에서의 폭력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는데, 현재 우리는 왜 같은 민족끼리 각자 만의 존립을 위해 폭력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폭력이 과연 올바르고 정당한 폭력인지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 제34차 임시의정원 위원의 모습

   사진 첫줄의 가장 오른쪽에 약산 김원봉의 모습이 보인다.

어떤 이들은 북행을 택한 당신을 그저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역사를 읽는 바른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한에 돌아와 민주주의민족전선에 가담했던 당신이 친일경찰 출신인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겪었던 그 고초는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일생을 광복에 헌신한 당신이 해방조국에서 그런 모욕을 당했으니 그 충격과 울분은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민족 해방의 입장에서 신념을 가지고 이념을 채택한 당신을 그 누가 욕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입니까?

벌써 6·25 60주년입니다. 60년 전 이념의 대립 속에서 많은 동족이 죽었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갈등은 커져만 갑니다.

남북분단이란 민족사의 질곡으로 남한에서 외면당하고, 북한에서는 숙청 당한 비운의 영웅이었던 김원봉, 당신의 정당한 폭력을 되새기며, 부당한 폭력 속에서 목숨을 잃은 6·25 전사자와 천안함 사건의 희생자들께 명복을 비는 것으로 이 글을 이만 줄이겠습니다.


약산 김원봉(金元鳳 : 1898~1958)

   독립운동가. 북한의 정치가.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하였다. 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의원 및 군무부장을 지냈으며,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11월 김일성(金日成) 비판을 제기한 옌안파[延安派] 제거작업 때 숙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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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봉선생이 선택한 독립운동방법은 '폭렬투쟁(暴烈鬪爭)'이다. '자유는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통해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제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약탈하지 못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셨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는 같은 민족을 향해 안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정당한 폭력을 행하신 김원봉 선생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게 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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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6 19:11 2010/07/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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