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스물 한 번째 편지 - 2010년 8월 24일        

100년 편지

간 나오토 일본 총리님께 -이이화-


   간 나오토 일본 총리님에게

   지난 8월 10일 총리님께서 발표하신 담화를 보도를 통해 잘 읽었습니다. 이 늙은 역사학자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하, 역시 민주당 정권은 과거 자민당정권과 다르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데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니 역시 아니었습니다.

▲ 1910년 한일강제병합 당시 "이완용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내용의 전권위임장. 1910년 8월 22일 데라우치 마사타케 한국통감과 당시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에 조인하고, 29일에 공표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소멸하고 36년간 일제식민 정치가 시작됐다.

   일본에 의한 한국강제병합을 두고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의 사죄의 기분”이란 표현을 보고 이에 걸맞는 새로운 내용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맹이가 하나도 없네요. 그 담화에는, 첫째 사할린 강제동원자의 한국 귀환을 후원하겠다는 것, 둘째 일본에 있는 강제동원자의 유골의 고국 귀환을 돕겠다는 것, 셋째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 중에 왕실의궤를 인도하겠다는 것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한국정부는, 진일보한 담화 또는 진정성이 과거보다 담겨 있어서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이명박대통령도 8.15경축사에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이런 논평과 반응은 너무나 수사적이고 가식적이고 도피적인 수준일 뿐입니다. 이런 논평과 반응을 보고 만족해하지 말고 그 진실과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또 지난 1995년 당시 무라야마 총리는 병합조약은 유효하다는 뜻을 깔아 놓으면서 “부당하지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담화를 낸 적이 있는데 이와 무엇이 다른지도 의심이 듭니다. 결코 진일보한 담화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가지, 이번 8.15에 간 총리께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것만은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요.

   보십시오.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인 피해자의 보상이 끝났다고 보는 게 그 동안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이었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백보 양보해 인정하더라도 진실로 중대한 사실이 빠져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 한일협정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은 문제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합니다. 그 몇 가지 중요한 문제만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1910년 맺어진 한국병합조약이 불법이므로 무효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 자민당 정부는 당시 국제법상 유효했다는 주장을 펴왔습니다. 간 총리의 담화가 새로운 내용이 되려면 이 조약이 강요에 의한 불법 무효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배-보상문제가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둘째 이런 여러 현안문제의 고리를 푸는 방법은 바로 국회의 입법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방법은 전혀 거론하지 않으면서 사죄나 반성이란 막연한 단어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런 참회의 단어를 쓰려면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한국인 원폭 피해자 수만명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금까지 일본정부에서 작은 보상이나 배려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 피해자들은 많은 보상과 돌봄을 받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원폭 피해자 문제를 풀게 되면 강제동원이나 종군위안부 문제도 저절로 고리가 풀릴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겠습니다. 사할린 문제와 유골문제는 지금 진행되고 것이지만, 약탈 문화재를 반환한다면서 먼저 조선왕실의궤를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좋은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화재가 양도가 아니라 엄연히 무단 유출이거나 약탈에 해당할 텐데 반환이라 하지 않고 인도라는 묘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법률용어로 인도와 반환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교묘하고 사술이 깔린 의식을 가지고는결코 진정이 담긴 반성과 사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올해는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며 8월은 한민족이 질곡의 식민지화의 달이면서 그 질곡을 푼 해방의 달이기도 합니다. 두 극단의 애환이 한민족에 드리워진 시기입니다. 하지만 한민족의 분단의 단초는 일본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해를 두 나라 민주시민들은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미래의 평화를 열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거의 진실은 가혹한 식민지 지배와 이에 맞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처절한 민족운동의 실상을 이해하자는 것이며 미래의 평화는 군국주의의 망령을 벗기고 두 민족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 미래를 열어가자는 뜻입니다.

   위협과 협박 그리고 온갖 방해공작을 마다않고 열악한 조건에서 벌이는 자기희생적 시민운동을 주목해 주십시오. 그러면 미사여구로 역사와 현실을 호도하는 발언이 함부로 나오지 않을 것이며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들의 망동을 억제하고 싶은 의지도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일본은 영원히 세계 평화의 방해자의 표본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참된 민주주의와 국가간 민족간 평화를 실현하는 데에는 민족우월주의 또는 극단적 애국주의는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간 나오토 총리시여, 정권은 짧지만 정의에 바탕을 둔 역사와 인권과 평화는 영원한 가치입니다. 내년 8월에는 부디 이 가치에 충실하시어 참 역사인이 되십시오. 한국의 보잘것없는 한 역사학자의 헛소리라 여긴다면 역대 일본총리들처럼 역사 속의 진흙 수렁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이이화

역사학자. 역사문제연구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서원대학교 교수 역임. 근래는 경술국치 100년 공동행동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저서로는 <녹두장군 전봉준>,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이이화의 역사풍속 기행>, <이야기 한국사> 등이 있다.



◎ 간 나오토 총리 담화 전문 

올해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 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多大)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여기에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わびの氣持)을표명합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 향후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해 갈 것입니다. 또한, 실시해 온, 이른바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금후에도 성실히 실시해 갈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되어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넘기고자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2천년에 걸친 활발한 문화 교류 및 인적 왕래를 통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깊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양국의 교류는 매우 중층적이며 광범위하고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게 느끼는 친근감과 우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양국의 경제관계 및 인적교류의 규모는 국교정상화 이래 비약적으로확대되었고, 서로 절차탁마하면서 그 결합은 극히 공고해졌습니다.

 

한·일 양국은 이제 금번 21세기에 있어서 민주주의 및 자유,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하며 긴밀한 이웃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는 양국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래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염두에 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세계경제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핵군축 및 기후변화, 빈곤 및 평화구축 등과 같은 지구규모의 과제까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폭넓게 협력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파트너 관계입니다.

 

저는 이러한 커다란 역사의 전환점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유대가 보다 깊고, 보다 확고해지는 것을 강하게 희구함과 동시에, 양국간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결의를 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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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일본 총리의 식민지 관련 발언 주요 내용

 

◆호소카와 담화

1993년 11월 6일 경주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호소카와 모리히토 총리 曰

"식민지 지배에 의해 한반도의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깊이 사과하고 싶다"

 

◆무라야마 담화

1995년 8월 15일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대해 "통절한 반성의 뜻"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며 일본이 침략 전쟁 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

 

◆ 오부치 담화

1998년 10월 8일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 曰

“일본이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

 

◆ 고이즈미 담화

2005년 8월 15일 전후 60년 총리 담화를 통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통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나타내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리는 마음을 표명합니다"라고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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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5 09:25 2010/08/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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