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열 아홉 번째 편지 - 2010년 8월 15일        

100년 편지

기노시타 쇼조와 이봉창 의사  -편집자-



 


   1932년 1월 8일 일본 육군 관병식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의 마차 앞에 수류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수류탄은 제대로 터지지 못했습니다. 수류탄을 던진 청년은 그 자리에서 체포됐고, 같은 해 10월 10일 아침에 처형됐습니다. 사진 속의 사람이 바로 이 청년입니다.


   청년은 조선인이었습니다. 이름은 기노시타 쇼조였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스물다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간 후부터 쓰기 시작한 이름이었습니다. 국세조사위원 등으로 일하며 잘 나가는 듯 했으나, 결국 그는 외판원, 석탄 짐꾼 등 일본 사회 밑바닥을 전전합니다. 조선을 떠나온 지 5년 만에 그는 다시 중국 상해로 떠납니다. 1년여 후 그는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 청년을 이봉창 의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기노시타 쇼조와 이봉창 의사. 이 두 이름 사이에 청년 내면에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학자들의 연구 주제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가 뼛속부터 중무장된 독립투사가 아니라, 본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이름을 바꿔가며 일본으로 건너간 청년, 하지만 지독한 조선인 차별 앞에 분노한 청년.


   그는 자신의 이익을 좆으며, 성공하기도하고, 좌절하기도 한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를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남긴 영웅 이봉창 의사로 기억합니다. 이봉창 의사이기 이전에 '기노시타 쇼조'로서의 삶은 좀처럼 회자되지 않습니다.


   꼭 이봉창 의사뿐만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모두가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백범 김구는 한 여인의 남편이었고, 홍커우 공원에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 의사는 시를 좋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압록강을 여섯 번이나 건넜던 정정화 여사는 한 아이의 어머니였고, 이름자도 남지 않은 숱한 독립군들은 농부였고, 목수였고, 장사꾼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어떤 논리로 목숨을 버려가며 조국 광복을 찾았는지 생각해 것이 광복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작은 책임은 아닐런지요.


   기노시타 쇼조와 이봉창 의사. 두 이름 사이에 어떤 뜻이 있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2010년 8월 15일

   '100年 편지를 쓰는 사람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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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4:21 2010/08/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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