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열 여섯 번째 편지 - 2010년 7월 27일        

100년 편지

반민특위 위원장 전상서 - 김정륙 -


아버지 뵙고 싶습니다.

그 험난한 독립운동의 고행과 우리 가족의 비애를 소자는 알기에 더욱 아버지가 그리워집니다.

6.25 때 신생 대한민국 건설에 꼭 필요한 수많은 인사가 서울에 갇혀 납북 당하자 거짓 사기극을 연출한 소위 고위층에서는 비판여론을 되돌려 볼 요량으로 북으로 끌려간 인사들에게 이념의 덤터기를 뒤집어 씌웠었습니다.

2006. 10. 1 성묘단이 당시 엄두도 낼 수 없는 북쪽 묘역 참배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묘역을 디딘 것도 잠시, 만나자 이별의 발걸음은 참으로 저희 남매를 서글프게 했습니다.

아버지! 아들 능이와 딸 길성이 따르는 술잔을 그 때 받으셨습니까?

영주 김상덕 선생(1891~1956)

일본과 중국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로 일본 유학시절 동경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1920년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기초를 닦는데 헌신했고, 광복 후 귀국하여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반민특위위원장으로 활동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손가화원 시절, 배고팠던 때가 왜 그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중경에서 한 달쯤이나 지나서 집으로 돌아오시면, 저의 손을 잡고서 통에 가득 쌓인 빨래를 들고 양자강가로 가셨지요. 아버지가 애써 빨래하는 사이, 철부지였던 저는 드넓은 모래사장을 설쳐댔고요. 그러다 싫증이 나서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아버지 코끝에 맺힌 투명한 콧물이 그렇게 아버지를 측은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빨래를 마치고 힘겨워 허리를 쭉 펴고 있자면 바구니를 지고 백사장을 오가는 행상들의 유혹에 한 잔 술이 간절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저는 그 때 읽었습니다.

한 잔 술을 망설이는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은 지금도 저의 심사를 저리게 합니다. 또한, 큰 맘 먹고 엄지손가락 보다는 조금 큰 한잔 술을 사게 되면 목을 젖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키려 했던 그 모습을 소자는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구니 속에 제일 만만한 안주 마른두부는 값만 묻고는 말았었죠.

일가를 이룬 훗날, 아버지의 손자 진영이에게도 일러 우리의 제상(祭床)에는 반드시 두부전을 차려 올리게 한 것은 이런 사연이 있어서입니다.

아버지. 어린 자식이 이런 걸 느껴 품어온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손가화원에는 이런 애처로운 회상이 있기에 저는 잊지 못해 그리워하나 봅니다.

아버지, 막내 영이가 죽자 충격을 받고 저희 남매를 고아원에 맡기셨지요. 고아원시절, 아침에 모기장을 개지 못해 저는 늘 벌칙을 받고 힘들게 살면서 먼 산을 쳐다보며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손가화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더 힘든 것은 사변 후 아버지를 잃고 떠돌게 된 정처가 없는 유랑 길이었습니다. 고향에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었고 한 때 지친 몸을 외갓집에 잠시 머물렀을 뿐, 거의 입을 다물고 의기소침한 성장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납북자 가족에게는 어처구니없게도 연좌제라는 올가미가 씌워져 소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기를 펼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 중경시의 손가화원 터

김정륙 선생이 아버지 영주 김상덕 선생과 유년시절 머물렀던 손가화원. 손가화원은 조선혁명당과 조선의용대 본부가 있었던 곳이다. 현재는 모두 헐리고 터만 남아있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뒤늦게 쇠락한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에도 연이 닿아 일가를 이룬 소자는 아들 진영(進玲), 딸 경은(京垠)을 얻어 아버지의 대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며느리 이름은 이건자(李建子), 참으로 현모양처로써 이 부실한 살림을 지혜롭게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러했듯 며느리 또한 고생병으로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며느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뵌 적이 없으나 저에게서 소상하게 얘기를 들은 것이 있어서 아마도 잘 찾아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 며느리를 보셨습니까? 많이 아프다 떠난 며느리를 부디 잘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손자의 이름을 진영이라 지은 것은 아버지의 못 다한 높은 뜻을 이어가게 하려는 속셈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 당당했던 기상이 손자에게 뻗혔으면 합니다.

아버지, 평양 룡성구 묘역에 세운 아버지의 비문에 1956. 4. 28(음 3. 17) 하늘나라에 오르신 것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전혀 알 길이 없으니 이날 함께 제상을 차리기로 정했습니다. 어머니에게도 알려서 이 날 같이 오셨으면 합니다.

평양 룡성구에 있는 영주 김상덕 선생의 묘 앞에서 술을 올리는 김정륙 선생.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인 김정륙 선생은 2006년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진행된 '재북 애국지사 후손 성묘단 후손 성묘단 평양방문'에 참가해 아버지 묘역을 찾았다.

아버지, 이참에 꼭 알고 싶은 의문 하나를 풀어주십시오.

어머니 사진 액자에 적혀 있는 글은 1939. 6. 7에 쓰신 것으로 됩니다만, 단순히 글을 쓰신 날짜인지 아니면 어머니 돌아가신 날짜를 기록한 것인지 저는 어머니 사진을 볼 적마다 이 의문을 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세상은 불의가 정의를 구축하는 난세입니다. 아버지가 쉽게 이해되시게 하자면 반민특위 때의 노덕술, 최운하, 최난수 등에 견줄 종자들이 나타나 세상을 난도질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들이야 육갑을 떨던 전봇대로 이를 수시던 상관하고 싶지도 않은 떼거리들 이지만 문제는 이들의 돌팔매에 나라가 다치고 우리의 우국선열이 온몸으로 지켜낸 역사가 다치고 있으니 좌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국을 무지막지하게 동강내고 있는 이 망나니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임시정부는 우리나라를 실효적으로 지배한 사실이 없으므로 임시정부는 없는 것이고, 미군정이 대한민국을 실효적으로 지배했으니 건국의 모태는 미군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의 논리를 보면 미국이 아닌 총칼을 잡은 미군정이 모태라는 점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 이전에 실효적 지배를 한 일본제국이 자연 우리의 역사라는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어, 유구한 우리의 역사를 동강 내려는 것이 이들 주장에 대한 해석이고 보니 친일 매국한 노덕술 등과 견주어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1950. 6. 28 중앙청 국기계양대에 인공기가 높이 올라 펄럭이고 있었는데도 도하신문에는 의정부 탈환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 했고, 국방장관, 육참총장의 허풍에 맞추어 일국의 대통령이 육성방송으로 ‘서울을 사수할 것이니 나 이승만을 믿으라’는 소리를 아버지와 소자가 귀 기울여 듣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한강다리를 끊어 퇴로를 막고 대통령은 멀리 대전에 내려가 놓고는 말입니다. 믿으래서 믿은 사람은 서울에 갇혀 잡혀간 것이 진실인데 진실이 살아있는 당시에는 조사해서 감추어 놓고 이제와서 슬그머니 납북인사들에게 월북좌파로 이념 매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예로부터 하늘은 몹쓸 인간들에게 천형을 내려 경종을 울린 것을 저희는 천둥 번개를 통해 봐왔습니다. 그렇잖아도 시시때때로 우리를 괴롭히는 강국에 둘러싸여 슬픈 조국에 이들의 작태는 응징 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아버지, 우리 세상에 지금 이런 고약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해방 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다 못 다해 생겨난 혼돈인 만큼 하늘나라에 품의하시어 이를 바로잡아 반민특위 위원장의 못 다한 몫에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소자는 이 탁한 진세가 싫어 조용히 전원으로 들어왔습니다. 동두천 산자락 밑에 작지만 우리 모두가 머물 집을 짓고, 진달래 동산을 만들어 힘겨웠던 잃어버린 세월을 평온하게 채울 우리만의 안식처를 지을 것입니다. 작지만 아늑한 정원이 가꾸어질 때쯤이면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고 아버지, 어머니를 뵈러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때까지 부디 평화의 나날이 있으시길 기원 드립니다.

소자 능 올림.

         

                김 정 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

   반민특위위원장 영주 김상덕 선생 子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10/07/27 18:09 2010/07/27 18:09

트랙백 주소 :: http://korea100.kr/tc/?/trackback/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