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열 번째 편지 - 2010년 6월 15일        

100년 편지

우당 이회영 딸 이규숙 고모님께 올리는 글 -이종걸-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했는데 가문이 무슨 소용이냐며 우당 이회영, 이시영 할아버지 6형제는 모든 가산을 팔아 항일독립전쟁을 위해 만주로 떠나셨습니다. 당시 갓난아이였던 규숙 고모님은 만주로 향한 항일대장정에 참여한 최연소자였으며, 1945년 해방이후 귀환한 몇 안되는 생존자중의 한 분이셨지요.

   태어나자마자 격랑의 민족사 한가운데로 던져진 고모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우당 이회영의 손자

18대 국회의원 이종걸

   9대째 정승을 배출한 소론의 대표적인 양반가도 그의 안일이 되어 주지 못했으며, 강보에서 잠시 머물 틈도 없이 차가운 압록강을 넘는 그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난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었음을 어린 이규숙은 알고 있었을까? 빼앗긴 조국을 찾는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오는 고난을 합한 아픔의 크기는 상상을 넘는 그것이었을 것 입니다.

   다양한 한국역사의 장면 중에서도 1910년 식민지 비극이 시작되던 해에 태어남으로써 고모님의 역할은 숙명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응모를 원치 않았을 100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묵묵히, 기꺼이 해 내셨습니다.

   고모님은 가장 어린 시절부터 중국의 문화를 체득하여 중국에서 영어 교사까지 할 정도로 언어에 영특했던 고모님은 북경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우월한 중국인으로의 변장이 가능하셨지요. 이런 능력은 철저히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쓰셨습니다.

   항일독립단의 유명한 무기 운반책으로 러시아가 독립운동집단을 무장해제 시킬때 작디 작은 작은 여아의 몸에 무기를 즐비하게 붙여 운반하셨습니다.

   어린 소녀였지만 그 기개는 누구보다 대장부였습니다.

   역사속의 고모님을 생각해 봅니다.

   항일운동을 하다 변절한자들을 응징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비밀결사조직인 다물단은 큰 할아버지 이석영의 큰아들인 이규준이 이끌었습니다. 다물단을 이끈 이규준 아저씨를 인도한 분이 고모였습니다. 고모는 이규준 아저씨를 인도하여 당시에 일제 앞잡이로 변절했다고 소문난 김달하를 암살했다고 하여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1년간 고초를겪기도 하셨지요. 또한 고모는 할아버지 이회영이 이상설 등과 교류를 하면서 남겼던 서신의 비밀보관책으로 활동도 하셨습니다. 마적으로 추정되는 일단으로부터 이회영 할아버지 거처가 습격을 받아 집이 불타올랐을 때 다락방에 몰래 모아놓았던 할아버지의 편지뭉치를 찾기 위하여 고모님은 망설임없이 불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자신의 불찰로 할아버님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저작물을 태워버렸다면서 자책까지 하셨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책임감있는 삶을 사셨지요.

   고모님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문한군관학교 졸업 후 중국군 소위로 제11로군에 근무한 바 있는 장해평과 결혼한 뒤 고모부는 김구 선생 밑에서 상해임시정부를 위하여 일본은행 등을 습격, 군자금 모집을 하면서 일본경찰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으며, 고모님은 남편의 위창책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당시 거물 항일독립운동가의 면회하는 일도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규숙고모님은 일본 경찰에 체포된 할아버지를 대련감옥에 수차례 면회하였고 이회영 할아버지가 고문으로 순국하시자 시신을 처음 수습하여 찾아온 장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 해방의 기쁜그날, 간난신고 끝에 귀국한 고국땅에서도 환영과 영광은 고모님을 비껴갔습니다.

   양반집 규수의 우아한 처우는커녕 모든 것을 버리고 항일의 대열에 섰던 젊음, 오로지 조국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걸었던 순간들도 그 횟수를 셀 수 없었던 일생이었건만 고모의 영웅적 역할은 여성의 운명으로 대표됩니다.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은 몇몇 저명한 남성의 몫이었고 고모님과 같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아버지와 남편들을 뒷바라지 하였던’것으로 역사에 기록될 뿐 그 영웅적 역할은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모님은 이후 계속되는 가난 속에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일, 정직하게 자식들을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모님은 만주에서, 상하이에서 적군을 호령하면서 군자금을 탈취하던 장수의 기상이 통하지 않는 남한의 현실을 한탄하기까지 했던 남편 장해평을 동정하고 이해했지만, 고모님은 고모부 장해평을 사회부적응증으로 자기 몸마저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고 호되게 질책하셨습니다. 이처럼 규숙고모님은 독립후에도 삶 그 자체가 독립운동가로곧은 분이셨습니다.

   규숙 고모님은 한국 근대사에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여성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장렬한 방법으로 채워나간 자랑스런 주인공이셨습니다. 대한독립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목숨을 바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명예를 폄하하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뉴라이트들에게 당신들은 국가의 근본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반국가적, 반역사적인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 준 분이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제 이름을 부르시며 걸어오실 것 같이 아직 고모님의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2010년 이종걸 올림.


이종걸 국회의원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의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으로 재임중이고, 소속 정당은 민주당이다. 이종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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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이 깨지면 특정부분이 웃자라듯, 이는 나머지 부분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고모님에게 쓴 편지에서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대사가 녹아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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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10:36 2010/06/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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