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열 한 번째 편지 - 2010년 6월 22일        

100년 편지

민족대표 34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선생님께  -박정기-

[극작가 박정기 선생이 '석호필'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

 

  석호필(石虎弼) 선생님, 어제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96호 선생님께서 영면하신 곳을 찾아 뵈웠습니다.

▲ 만년의 스코필드박사
(사진제공:스코필드박사사이버기념관)

   1919년 이 땅의 백성이 일제의 강제 병탄에 반대하여 고종황제의 인산일인 3월 1일에 맞추어 온 겨레가 독립만세를 부르던 날, 선생님께서는 그 현장 하나하나를 촬영하고 우리의 독립의지를 영자신문에 발표해 전 세계에 우리의 3 1운동을 알리는 고마운 일을 하셨습니다.

   특히 일제의 의한 수원 제암리 양민집단살해사건의 현장을 방문해 촬영을 해서 세계에 알리신, 선생님의 위험을 무릅쓴 용기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사장될 번한 사건이었습니다.

   일제치하당시 선교사겸 세브란스 병원의 수의사로 일하시며, 윌슨미국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원칙을 우리 겨레에게 상세히 알리시고, 우리에게 독립심을 고취시키고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치게 하셨던 선생님의 가르치심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감동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를 감옥으로까지 찾아가 격려하셨고, 일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역시 우리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강우규 의사의 공판정을 매회 방문하여 강우규 의사께서 사형선고를 받기까지의 소식을 세계에 알리시어 일제로부터 미움을 사신 일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 1919년 제암리 사건
왜경과 이야기하는 선교사 뒤에서 몰래찍은사진
(사진제공:스코필드박사사이버기념관)


   영국태생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장이기도 한 워릭셔에서 태어나시고, 젊은 시절 캐나나로 유학을 가 수의학을 공부하셨고, 졸업을 하시자마자 동양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로 찾아와 대학에서 젊은이에게 수의학을 가르치시며 독립심을 고취시키고 평생을 이 땅에 서 선교사업을 하시다가 영면하신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 선생님,

   금년이 상해 대한임시정부수립 91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한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선열들께 편지쓰기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담아 선생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감사의 편지를 올립니다.

▲ 봉사와 후학양성에 헌신한 스코필드 박사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린 스코필드박사의 한국명은 ‘석호필’이다. 그는 3.1운동이후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제암리 사건의 현장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58년부터 한국에 영구정착하여 1970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묻힐 때까지 보육원 후원과 젊은 지도자들의 양성에 힘썼다. (사진제공:스코필드박사사이버기념관)


2010년 한국희곡문학상 심사위원장 극작가/연출가 박정기(朴精機)

   

박정기 극작가

황해도 출신으로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였다. 극단 희로무대, 가교, 실험극장, 동인극장, 성좌 공연에 출연하였으며, 각종 작품을 연출하였다.
고교때부터 연극을 한 그는 젊어서도, 늙어서도 그리고 죽어서도 연극을 하는 연극인이라고 자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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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필드 선생의 이름, '石'은 종교적인 굳은 의지를, '虎'는 호랑이, '弼'은 돕는다는 뜻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의지를 이름을 통해 표현했다.
선생의 이름을 보면서 선생께서 대한민국을 위해 걸어오신 길과 우리의 역사가 이름에 선명하고 고스란히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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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2 18:52 2010/06/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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