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쉰 일곱 번째 편지 - 2011년  5월 10일        

100년 편지

곽태영 선생 의거비에 쓰인 ‘아드흐’를 아십니까? -김영조-



▲ 곽태영 선생 의거비

   백범 김구 살해범 안두희를 응징한 곽태영 선생의 의거비를 찾은 것은 4342년(2009) 10월 18일이었다. 이날 양구의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했던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김용삼(63살) 회장은 “곽 선생이 안두희를 응징한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김구 선생을 암살하고도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춤추듯 행동하던 자를 응징한 일이며, 해방 후 최초로 민족반역자를 응징함으로써 교훈을 남긴 큰 사건이다.”라고 강조했다. 당시 안두희를 응징했던 상황을 직접 곽태영 선생에게 들었던 김용삼 회장을 통해 들어보자.

   “1965년 12월 중순, 선생은 안두희 실물 사진을 품은 채 혼자 행상차림을 하고 강원도 양구로 향했다. 안두희가 운영하는 군납공장을 살필 수 있는 민가에 장사하러 온 사람이라고 속이고 하숙을 얻었다. 실제 장사꾼처럼 보이려고 민가에 물건을 팔면서, 안두희 공장에도 들러 노동자들에게 양말 장갑 등을 살 것을 권하는 척하면서 군납공장을 비롯하여 살고 있는 집 등의 정보를 얻어냈다.

   그렇게 여러 날 동태를 살피던 중 운명의 1965년 12월 22일 오전, 하숙집에서 군납공장을 내려다보니 안두희가 타고 온 것이 분명한 지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떨렸다. 동네 청년처럼 보이도록 흰 와이셔츠 차림을 하고, 주머니에 칼과 자백 받을 필기도구를 넣고 두부 공장으로 향했다.

   문 앞마당을 들어서서 우물가에 세수하러 나와 있던 안두희에게 ‘김구 선생님을 살해한 민족의 원수야!’라고 소리쳤고, 이내 격투가 벌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중 선생은 그의 배에 올라타고 돌을 집어 얼굴을 내려치고 칼로 찔렀다. 마당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공장 직공들이 몰려 와 나를 사정없이 때리기에 ‘너희 사장이 누구인지 아느냐, 김구 선생을 살해한 민족의 원수다. 나를 때리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였다.”

   이때는 선생의 나이 29살, 백범 선생 묘소에서 암살자 응징을 약속한 10년의 마지막 해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온 나라에서 6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곽태영 애국 청년을 석방하라는 서명에 참여하는 등 폭발적인 반향이 일었고 선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장한 일을 했다는 1만여 통의 격려편지를 받았으며, 아들의 자랑스러운 일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하며 기뻐했다.

   이러한 국민의 열화와 같은 노력으로 선생은 사건 8달 만인 1966년 7월 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선고를 받고 석방되었다.

   당시 아무도 응징하지 않던 김구 저격범을 처단하는 민족혼을 보여준 곽태영 선생을 추모해 남궁경(76살, 원주 거주)이란 분이 의거비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 의거비를 세울 무렵엔 전두환 군사정권의 살벌한 분위기 탓에 남궁경 선생은 큰 결심을 해야만 했다.

▲ 곽태영 선생 의거비에는 안두희의 이름을 원래 ‘아드흐’라고 새겨 놓았었다. 그것을 어떤 이가 잘못 쓴 것인줄 알고 ‘안두희’로 고쳤다.

▲ 곽태영 선생 의거비를 세운 남궁경 씨는 비석 옆에 백범 선생 서거 33돌에 33자의 글씨로 3월 3일 21시에 세웠다고 새겼다.(왼쪽) 또 다른 쪽 옆에는 남궁경 선생의 이름 아래 받침 ‘???’과 세울 립(立)자의 받침 ‘?’이 새겨져 있다.(오른쪽)


   곽태영 선생을 기리는 양구 의거 비석에는 음각으로 ‘아드흐’라는 글씨가 새겨 있다. 무슨 뜻일까? 알아본즉 의거비를 세운 남궁경 선생이 안두희가 천추에 씻지 못할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이름을 제대로 써줄 수 없다며, 일부러 받침을 뺐다고 한다. 그 뒤 어떤 이가 안두희 이름을 잘못 썼다며 받침을 새겨서 지금은 서툰 글씨의 안두희로 바뀌어 보인다.

   또 비석 옆면에는 첩보전 암호 같은 ‘33-33-3. 3-21’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지 33년(1982) 되는 해에 글자 33자로 3월 3일 21시에 비석을 세웠다는 뜻이다. 반대편 옆에는 또 다른 암호 같은 글자 ‘ㅁㅇㅇㅂ’가 새겨 있는데 이것은 남궁경 선생의 이름 아래 받침 ‘ㅁ ㅇ ㅇ’과 세울 립(立) 자의 받침 ‘ㅂ’을 새긴 것이다.

   여기 곽태영 선생 양구 의거비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날 모임에 함께 한 이들로 김영진(65) 전 양구주민연대 대표를 중심으로 김창현(76, 농업) 양구주민연대 회원, 조인선(37) 공무원노조 양구비상대책위원장, 한명희(43) 양구여성농업인센터 대표가 그들이다. 그들을 중심으로 해마다 8월 15일 20여 명이 의거비에 모여 김구, 곽태영 선생을 기리며 민족에 대해 생각을 한다. 여기에는 양구주민연대와 양구공무원노조를 중심으로 양구농민회, 전교조 양구지회가 힘을 보태고 있다고 전한다.

▲ 양구군청은 박정희가 제5사단장 시절 관사로 썼다는 집을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 박정희 관사 전시장 앞에 세운 비석


   의거비를 둘러 본 후 의거비 가까이에 관광 상품화되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5사단장 시절 관사로 쓰던 집을 둘러보았는데 김영진, 김창현 씨 등은 귀한 양구군 예산을 ‘박정희 세우기’에 쓰고 있다며 개탄하기도 했다. 또 이 자리엔 '곽태영 선생' 의거비를 세울 때 땅을 내주었던 홍주범(98살) 선생이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자리를 함께해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다.

   김구 선생은 남의 땅 중국에서 온몸을 불살라 조국독립을 실현하고자 몸부림을 쳤다. 무려 27년간이나 일본군의 눈을 피해가며, 이봉창 열사 등을 통해 일본을 응징해왔고 겨레의 숨결을 보듬으려고 몸부림쳤다. 그런 우리 겨레의 위대한 지도자를 암살한 안두희를 응징했던 곽태영 선생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를 기념하는 의거비는 우리가 소중히 아껴야 할 유산이다.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날마다 쓰는 인터넷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를 집필하고 있으며 (2,084회, www.koya.kr) 그간 어렵고 딱딱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통해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김영조의 민족문화 바로알기>를 오마이뉴스에 800여 편 연재한 바 있으며 KBS, 국악방송 등 언론매체와 서울시립대, 상명대, 서울시지원 “다시 쓰는 서울문화” 강좌 등을 통해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한국문화의 아름다운 속살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곽태영[1936 ~ 2008]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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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4:59 2011/05/0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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