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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삼백 한번째 편지 - 2018년 10월 30일      

100년 편지

김구 선생님께 -박희명-


선생님,

보고 계신가요?

2018년의 대한민국 말입니다.

요즘 들어 저는 선생님이 즐겨 쓰셨던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청와대 여민관 수석보좌관회의실 앞에 걸린 백범 김구 선생의 유가족들에게 기증받은 친필 액자(오른쪽)와 이동재 작가가 쌀을 이용해 만든 '아이콘 김구'(왼쪽) 작품

휘호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48년에 남기신 휘호에 유독 저 글귀가 많이 보이는 이유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 휘호를 쓰실 때의 선생님 마음도 헤아려 봅니다.

위도로서의 38선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지만, 조국을 분단하는 외국 군대들의 경계선으로서의 38선은 일각이라도 존속시킬 수 없는 것이다.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백범 김구 <남북통일은 세계 평화의 초석>

 1948년 4월 19일, 조국의 분단과 동족의 상잔을 막기 위해 선생님은 직접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향하셨던 선생님은 5월 5일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십니다. 이제 첫 걸음을 떼었다며 통일정부 수립을 긴 호흡으로 계획하고 계셨는데, 불과 5일 후인 5월 10일 38선 이남지역에서의 단독선거가 실시되었지요. 이북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의 염원과는 다르게 한반도 분단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 길의 끝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직감하고 계셨던 선생님은 삼천만 동포에게 자주적 민주적 통일조국의 건설만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이라는 것을 눈물로 호소하셨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냉전체제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찌 선생님 혼자 막아낼 수 있었겠습니까.

1948년 남북연석회의을 위해 38선을 넘는 백범김구(가운데) 일행, (왼쪽) 당시 비서 선우진, (오른쪽) 백범의 아들 김신

  2018년, 올해는 선생님이 통일조국 건설을 위한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신 지 7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 70년 동안 남과 북은 가깝고도 먼 관계였습니다.  70년 동안 평양을 방문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단 세 명이었습니다. 그래도 올해에만 남북의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났고 더 만날 계획이라 하니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면 선생님께서 염원하셨던 통일의 길도 보이지 않겠습니까.

  ‘마음 속의 38선이 무너져야 땅 위의 38선도 무너질 수 있다’고 했던 선생님의 말씀을 새삼 깨닫게 되는 오늘입니다. 

  얼마 전 청와대 여민관에 선생님의 존영과 휘호 ‘답설시’를 걸어둔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되내이는 것이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70년 전 남북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역사를 교훈삼아 지금의 남북대화를 소중히 이어갈 수 있도록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모으겠습니다.

  언젠가, 평화로운 통일 조국이 이루어지게 되면 선생님의 후손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제 역할을 다했노라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박 희 명

 

백범 김구기념관 학예팀장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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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12:16 2018/10/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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