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

서른 아홉 번째 편지 - 2011년 1월 3일        

100년 편지

홍범도 장군께 올리는 편지 -임동석-



   2011년 새해 대한민국의 날씨는 매우 차갑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이 계시던 1920년의 만주는 여기보다 더 추우셨겠죠?

▲ 홍범도 장군

   장군님께서 대한민국에 계셨다면 그렇게 춥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아니 만주에 계시더라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보셨다면 따뜻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장군님께서 독립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신지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장군님께서 일생을 바쳐서 독립운동을 해주신 덕분에 너무나 편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국 유학시절, 우연히 독립군에 관한 유적지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봐야함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고, 내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운 우리의 조상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듯 했습니다. 또한 조국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독립군 용사들에게 절로 감사함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다 보니 2000만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지고 독립투쟁을 하셨을 장군님 모습에 제 가슴이 벅차올라 뜨거워집니다.

   장군님.

   조국의 산하가 아닌 외국에서 수많은 일제의 군사들과 맞닥드리고, 그들의 총칼아래 우리의 청년들이 죽어갈 때 얼마나 두려우셨습니까?

   죽음보다 더 깊은 두려움을 이겨내시고 장군님께서는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온몸을 불살라 우리나라의 이름을 일제 앞에 드높여 주셨습니다. 장군님과 많은 무명의 독립군의 노력에 우리는 1945년 독립을 할 수 있었지만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눈 감으시는 그 순간까지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원하셨을 장군님의 모습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장군님과 많은 독립군의 노력을 알기에 항상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는 모습에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럽습니다.

   장군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행복과 평화를 더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제 개인이 더욱 노력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평생을 밟고자 했던 이곳 대한민국.

   우리 후손들이 더 행복하게 아름답게 가꾸어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천도(天道)가 순환하고 민심이 응합하야, 아(我) 대한독립을 세계에 선포한 후 상(上)으로 임시정부가 유하야 군국대사를 주하며, 하(下)로 민중이 단결하야 만세를 제창할 새 어시호 (於是乎) 아(我)의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독립군이 출동되엿도다. (중략)

   당당한 독립군으로 신(身)을 탄연포우(彈煙砲雨) 중에 투하야 반만년 역사를 광영케 하며, 국토를 회복하야 자손만대에 행복을 여(與)함이 아(我) 독립군의 목적이오 또한 민족을 위하는 본의라.”

   대한독립군 대장님으로 계실 때 이런 유고문을 말씀하셨었죠?

  선생님 말씀 가슴에 새기고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으로 알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동석



  (주) 멕그로우 컨설팅 근무

홍범도 [洪範圖, 1868~1943.10.25]

   한말의 독립운동가. 만주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군이 되어 일본군을 급습하여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최대의 승전을 기록하였으며, 청산리 전투에서는 북로군정서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였다. 그 후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부총재가 되었으며,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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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1:46 2011/01/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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