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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삼백 네번째 편지 - 2018년 12월 18일      

100년 편지

원산총파업 조합원 선배님들에게 -이해관-


원산총파업 조합원 선배님들에게

안녕하십니까. KT새노조 조합원 이해관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마련한 <백년편지> 지면을 빌려 인사를 올립니다. 선배님들께서는 우리 독립운동사에 “노동”이라는 두 글자를 또렷이 새기셨습니다. 제가 선배님들의 역사를 처음 배운 게 1982년 대학 1학년 때니, 벌써 3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인사 한 번 못 드린 무정한 후배를 용서해 주십시오.

선배님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는 조선의 백성이었습니다. 공자와 주자 뒤에 숨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기 바빴던 왕과 양반들. 조정이 그 알량한 대동법을 개혁이랍시고 150년 동안 만지작거리던 사이, 서양은 농민전쟁과 명예혁명을 겪으며 바다로 나왔습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되었고, 그 에너지가 산업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든 게 늦었습니다. 사대(事大)라는 이불을 덮고 두 발 뻗고 자던 왕조는 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며, 백성이 동학군이 되고 의병이 되어 나라를 구하려 했지만 이미 세계사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서캐도 걷어내지 못한 판에, 불가사리가 등장한 겁니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이 짊어져야 했습니다.

이리하여, 가렴주구에 울던 농민의 아들은 식민지의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이들이 바로 선배님들이셨지요. 공장도, 출퇴근도, 임금도, 모두가 낯설었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일제 감독이 휘두르는 채찍까지…. 그러나 이내 선배님들은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일제의 착취와 수탈에 맞섰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배님들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일찍이 방곡령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원산.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최용신이 졸업한 루시여학교가 있던 원산. 그 원산에서, 1929년 1월 13일 선배님들께서 세운 원산노동연합회가 일제 감독의 욕설과 구타에 항의해 총파업을 결의합니다. 1월 22일부터 노동조합이 있던 모든 공장에서 기계가 멈추었고,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습니다.

원산 총파업

그 당시 서울(경성) 인구가 35만이었으니, 원산에서 2천명이면 적은 수가 아닙니다. 조합원들은 파업기금을 모으기 위해 금주를 선언하고 매일 5전씩 갹출했으며, 5개월분 식량을 준비했습니다. 삼엄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뚫고 이 큰 투쟁을 조직하셨다니, 후배로서는 놀랍기만 합니다. 이렇게, 일제의 대륙침략 전진기지의 하나였던 원산의 산업과 행정은 마비되었지요.

일제는 깜짝 놀랐습니다. 즉시 비상경계령을 내려 함경남도 경찰 1천명을 투입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던지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파업 지도부를 붙잡아가고, 노동자들을 해고했습니다. 사람 구실 못하는 자본주들의 습성이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그 시절에도 ‘구사대’라는 게 있었다고요? 노동현장에서 구사대의 폭력을 직접 겪은 저로서는, 그때 선배님들께서 당하셨을 상황에 정말 치가 떨립니다.

그러나 선배님들은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원산시민은 한마음 한뜻으로 선배님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했습니다. 그분들이라고 총파업이 독립운동인 걸 몰랐겠습니까. 이 처절하고 장엄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피어난 고귀한 형제애를 증언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김학철 선생의 <격정시대>입니다.

무장경찰과 구사대가 파업 노동자들을 덮치는 순간, 항구에 정박한 선박들에서 일제히 일본말로 구호가 우렁차게 터져 나온 것입니다. “스또 반자이!(파업 만세!)” “교오다찌다이 감바레!(형제들, 버텨라!)” 다름 아닌 일본인 선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발을 구르며 연신 구호를 외쳤고, 배마다 일제히 경적을 울렸습니다. 조선의 노동자와 일본의 노동자 사이에는 조센징도 일제도 없었던 겁니다. 그 서슬에 놀란 망나니들은 일순 움찔했고, 힘을 얻은 선배님들은 더 큰 함성으로 맞섰다지요?

선배님들의 우군은 원산시민과 일본인 선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신간회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성금과 물품을 모아 전달했고, 해외에서도 수많은 노동운동 단체들이 격려 메시지와 지원 물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연대, 인간과 인간이 진정으로 두 손을 맞잡을 때 타오르는 인류애의 불꽃이 아니겠습니까.

원산 총파업 당시 신문

선배님들께서는 일제의 야만적인 파업 분쇄 작전에도 굴하지 않고 장장 석 달 동안이나 버텼습니다. 원산총파업은 패배로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이 영원한 승리의 출발점임을, 선배님들은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야비한 심성, 인간성의 밑바닥에 도사린 굴종과 분열의 유혹을 거부하고 “노동 해방”의 큰길로 나선 그 소중한 기억을.

그것은 선배님들께서 우리 후배 노동자들에게 물려주신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1986년, 저는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선배님들께서 먼저 행하셨던 대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우리에게서 인간성을 앗아가는 물신(物神)의 탑에 동료들과 함께 돌진했습니다.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저희들의 깃발이었습니다. 선배님들의 노동운동이 독립운동이었다면, 후배들의 노동운동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후배들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노동조합은 민주와 정의와 용기의 대명사가 아닙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를 끌어내린 촛불의 무대를 제공했음에도, 시민사회의 감사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누구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외톨이나 천덕꾸러기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선배님들께서 상상도 못 하셨을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국이 둘로 쪼개진 것도 기가 막히실 터인데, 남녘땅에서는 “양극화”라는 단어가 노동자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 이 진리가 통하지 않게 된 겁니다. 노동조합이라고 다 같은 노동조합이 아닙니다. 정규직 노조 따로, 비정규직 노조 따로. 상상이나 되십니까? 사회구조가 아무리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런 염치없는 짓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용렬한 후배들을 꾸짖어 주십시오.

적어도 노동조합 간부라면, 90년 전 선배님들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는 게 곧 실천은 아니겠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알고는 있는 건지 저부터가 의심스럽습니다. 어쩌면, 그 두려움에 선배님들께 편지를 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KT라는 회사는 그 옛날 전화국입니다. 20년 전, KT노동조합 조합원 5만명은 똘똘 뭉쳐 정부에 맞서 통신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KT노조는 민주노총의 핵심부대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가 얼마나 놀랬던지, 저희를 “국가전복세력”이라고 손가락질하며 길길이 날뛰었죠. 된통 당했고, 저 역시 오랜 기간 해고자 신세로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도 이미 흘러간 노래가 되었습니다. KT노조는 민주노총과도 등을 진 지 오래이고, 복직한 저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새노조를 겨우 꾸려가고 있습니다. 조합원 50여명에 불과한 ‘미니노조’입니다만, 비정규 노동자들과 힘을 합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닙니다. 작은 성과도 거두었지만, 조합원 다수가 50대 중반이라, 저희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누가 바통을 이어줄지 막막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KT를 “신의 직장”이라는 말합니다. 월급 많이 주고, 일하기 편하다는 뜻 정도로 새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으시지요? 그래봤자, 임금노동자이기는 마찬가지 신세인데, “신”이라니요. 세상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제가 끼어들어 노동운동을 그르친 게 아닌지 새삼 모골이 송연합니다.

얼마 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KT 아현지사에서 통신구 화재 사고가 났습니다. 한양 애고개(애오개)라고 하면, 선배님들께서 아시려나요? 역시 선배님들께서는 상상도 못하시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사이는 정(情)이 아니라 광통신으로 이어져 있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으면 사람들은 아무 일도 못합니다. 이를 일컬어 “초연결사회”라고 하지요.

광통신 설비가 빽빽이 들어찬 통신구에 불이 났으니,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고칠 기술자는 정작 정규직 중에는 없었습니다.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험하고 고된 일은 몽땅 외주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화재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만일 화재가 큰 통신구 몇 곳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게 바로 ‘IT강국’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20년 전 파업 때 정부는 저희를 “국가전복세력”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그 국가전복세력들이 힘을 빼앗긴 빈자리에 신자유주의가 물밀 듯 들어왔습니다. 재벌과 건물주가 오늘의 불가사리입니다. 조선이 민본(民本)으로 어르면서 백성을 개돼지 취급했다면, 대한민국은 민주로 화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앗아갑니다. 이쯤 되면 저들을 “사회말살세력”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겠지요? 선배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동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까?

2018년 12월 17일

KT새노조 조합원 이해관 올림

             이 해 관

 

1963년생.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 제적된 뒤,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30년째 노동조합원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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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15:15 2018/12/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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