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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이백아흔두 번째 편지 - 2018년 6월 26일      

100년 편지

하얼빈 땅에서 잠들고 계신 할머니께 -이태룡-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돌아가신 지 70년 만에야 하얼빈에 와서 할머니를 불러 봅니다.

올해(2015)는 조국이 광복된 지도 70년이니, 할머니 돌아가신 햇수와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뿐인 아들(필자의 선친)이 보고 싶어 천 리나 떨어진 목단강성 어느 산골짜기로 사람을 보냈는데, 그 아들은 ‘엊그제 설에 뵐 때 건강하셨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또 보고 싶어서 아프다고 거짓말하신 것이겠지’하고는,

“알았으니, 며칠 뒤에 뵈러 가겠다고 전해 주시오.”

라고 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심부름 온 사람이 할머니 안경과 담뱃대를 가지고 온 것을 보고는 부리나케 귀가해 보니, 우리 나이 쉰여섯 살에 열병(장티푸스)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른 뒤였고, 뒷밭에 모셨다고 하니, 광복되기 불과 넉 달 전이었다고 합니다.

목단강성 깊은 산골짜기 독립군 가족이 산재한 곳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도우고 벌목하여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하던 그 아들은 뒤늦게 광복 소식을 듣고, 하얼빈 집에 돌아와 보니, 집과 가축을 이웃 중국인이 돌보고 있었는데,

“해방이 되었으니, 왜놈 없는 고향에 다녀와야지.”

하며, 먼저 떠난 할머니의 딸과 사위를 뒤따라 귀향한 후 영영 할머니가 묻힌 하얼빈 땅을 밟지 못하고 말았는데, 늘 할머니를 그리워하던 그 아들은 20년 전 위암이 온 몸에 퍼져 회생할 가망이 없자,

“내가 죽기 전에 어머니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유골을 모시고 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하고, 하얼빈에 와 보니, 하얼빈 역두(驛頭)에서 수백 미터 거리에 있던 집과 논밭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한 모습에 감히 할머니 산소가 있던 밭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눈물만 쏟고 돌아온 후 넉 달 뒤에 할머니가 계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묵비(하얼빈 조린공원)

할머니, 손자는 할머니 아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할머니를 그릴 수 있을 듯합니다. 당시 명망가 청송 심씨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나 큰 키에 미인이셨는데,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얽어서 좋은 혼처를 구하지 못하고 있던 중, 스스로 할아버지 후처로 오셨다고요.

당시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 형제가 두 분이셨지요. 큰할아버지는 1870년생이고, 할아버지는 1878년생이셨는데, 큰할아버지는 1남3녀를 두고 있었지요. 하나뿐인 아들(1890)이 열여덟 살에 의병에 참여하자 후사를 걱정하여 그 해 겨울에 혼인을 시켰는데, 이듬해인 1908년 6월 10일(음력 5월 12일) 동료들과 더불어 총기와 총탄?화약 탈취를 목적으로 경남 진주병기창을 공격하여 일본군 보초병을 살상하고 총기 등을 다수 획득한 후 병기창을 폭파하는 과정에 피폭되어 창자가 몸 밖으로 나오는 중상을 입고 피체되었다고요. 일본 군경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당시 진주부 수서기였던 부친과 집안의 안위를 위해 눈으로만 하직인사를 하고 돌아가셨다고요. 그 후 전사한 의병의 신분을 밝혀낸 일본군경은 큰할아버지를 수차례 헌병대로 끌고 가서 문초를 거듭하고, 급기야 9대조 때부터 살아오던 집을 방화하는 바람에 불을 끄는 과정에서 할머니(1877)가 부상을 당해 얼마 후 돌아가시게 되고, 이어 이듬해 정월에는 고문 후 증으로 큰할아버지마저 병사하고 말았으니, 할아버지는 몇 달 사이에 형과 아내, 조카를 잃고, 질녀 셋을 데리고 살아가는 홀아비가 되셨다고요.

우리집 9대조는 문과급제 후 사헌부 장령(정3품)으로 있을 때 정조 임금이 따님을 후궁으로 낙점하는 바람에 이조참판(종2품)에 제수되었는데, 며칠 뒤 임금이 급사하는 바람에 벼슬도 버리고, 고향 땅 경기도 고양을 떠나 경남 고성군 개천면(당시 진주군)으로 이주해 살았다지요. 큰할아버지는 열여덟 살 되던 정해년(丁亥年, 1887) 2월 제술(製述)로 입격한 후 증조할아버지께서 웅천(진해) 수군만호(水軍萬戶)로 나아가자 다시 진주로 귀향해 있으면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있었는데, 을사늑약 직후 내부대신 이름으로 큰할아버지를 진주부 주사로 임명했지만, 실제로는 광무황제가 직접 벼슬을 내렸다는 시찰사(視察使)의 통보를 받고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지요.

할머니, 질녀 셋을 데리고 살아가던 열두 살 많은 홀아비한테 시집와서 딸을 셋 낳고 막내로 아들(1923)을 두시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장터에서 들은 할아버지께서는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고요. 그러나 아들이 여섯 살 되던 해 할아버지는 큰딸을 시집보낸 후 병사하시니, 질녀 셋을 시집보내고 두 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야 했지요. 전답은 꽤 되고, 임야는 수십 정보나 되었으며, 옛날 면천해 주면서 전답을 나눠준 이들이 이웃에 살아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갔지만, 늘 일제와 그들 앞잡이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아들을 품에 끼고 지내셨다고요.

아들이 여덟 살을 지나 열 살이 돼도 소학교나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자, 아들은 학교 보내달라고 졸라서 11세에 개천국민학교에 입학, 17세 때 졸업하게 되었는데, 또 상급학교로 가려고 하자,

“우리집은 농사도 많은데, 누가 다 하겠나?”

하시면서 진학을 허락하지 않자, 그 아들은 당시 진주사범학교 국민학교 교원양성 과정 갑과에 응시하여 합격, 그 합격증을 내밀자, 아들의 손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서 우리집 내력을 이야기 하시고는,

“원수놈의 나라에서 훈장질을 하겠다는 생각일랑 아예 꿈도 꾸지 마라!”

아들이 품에 안고 내밀었던 자랑스러운(?) 합격증을 찢고, 서둘러 딸 내외를 먼저 만주로 보내 터전을 잡게 한 다음, 이어 아들 손을 이끌고 하얼빈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셨다고요.

할머니, 아들이 어릴 때 집안내력을 알고 혈기를 참지 못하여 무모하게 일본군경에 대들어 해를 입을까 염려되어 철들고 나서야 이야기를 해 주시고는,

“너는 양가의 2대독자이니, 빨리 혼사를 치러 대를 이어야 한다. 원수를 갚겠다고 일본군경에 대들거나 독립군, 마적단에 나가서도 안 된다.”

라고, 엄명을 내려 당시 독립군을 모집하러 은밀히 접근해 온 사람에게 집안내력을 이야기해 주고, 총칼은 절대로 잡지 못하게 해서 독립군 가족을 돕는 일은 해도 좋다고 하고, 믿을 만한 고향사람을 붙여서 천 리나 떨어진 산골짜기로 보냈던 것이지요.

할머니, 할머니 아들이 손자에게

“너희 큰아버지와 큰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아라.”

라는 말에 서부 경남의 의병연구를 거듭했지만, 광복 후 일본 경찰을 했던 무리들이 그들의 부역 행위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 진주법원을 불태우는 바람에 당시 법원에 보관 중이던 기록은 잿더미가 되고 없었습니다. 1907년 여름부터 1909년 봄까지 진주와 지리산, 덕유산 자락의 의병 3천여 명 순국하고, 3천여 명이 붙잡혀 재판에 넘긴 기록은 있으나 거기에는 자세한 이름과 사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알 길이 없었습니다. 손자는 혹시 일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여 일본 야마구치 대학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강탈해서 만든 ‘데라우치 문고’에 있는 책과 문서 1만 8천 개의 목록 중에서 70여 종 200여 권을 살펴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일본의 왕실도서관에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거기를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쉽지 않아 마음만 답답합니다.

할머니, 오늘은 삼월 초이틀, 할머니 제삿날입니다. 조금 있으면, 할머니 손자 다섯 명과 증손자 일곱 명이 할머니께 술잔을 올리고 절하기 위해 올 것입니다. 오늘은 증손자들에게 할머니에 관하여 좀 자세히 전하고자 합니다. 할머니,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 이 글은 2015년 독립유적지 답사할 때 써놓은 것을 3년이 지난 뒤에 정리한 것입니다.

             이 태 룡

1955년 경남 고성 출생. 문학박사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부설 의병연구소장

논저:「최익현의 순창의병과 유소 연구」 등 20여 편의 논문 『한국의병사』(상·하) 등 26중 34권의 저서

세계인명사전 등재

2011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 선정,‘올해의 국제 교육자 100인’미국 인명정보기관(ABI) 선정,‘21세기 위대한 지성’ 2012년 IBC 선정, ‘세계 Top 교육자 100인’, ABI 선정, ‘세계 훌륭한 지도자 5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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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14:09 2018/06/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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