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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삼백 마흔일곱번째 편지 - 2019년 4월 26일      

100년 편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전봉준 녹두 장군님께 드립니다 -강기갑-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장군님! 잘 계시옵니까?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편치 못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이곳 우리 농민들과 민중들의 삶이 장군님께서 사셨던 120여 년 전과 비교해도, 절대적 빈곤은 편리함이나 풍요로움 면에서는 천국 같은 세상이지만, 장군님께서 그렇게 간절하게 온몸으로 외치셨던 척양척왜’, ‘평등사상의 차원에서 보면 120여 년 전이나 여전합니다.

전봉준

보국안민! 척양척왜! 국민의 안녕을 위하여 나라를 보하고, 자주와 자유를 억압당하지 않기 위하여 외국을 몰아내자는 장군님의 혁명 깃발이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들불 되어 일어서던 100여 년이 훨씬 넘은 지금에도 여전함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장군님의 마음이 얼마나 애타고 안타깝겠습니까?

녹두장군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자유와 자주를 외치며 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산화해 가신 선열께 후예들이 올리는 편지글 운동에 동참하여 녹두장군님께 글을 올리려니 가슴이 미어지고 통탄함이 바늘처럼 찌릅니다.

사람의 평등과 자유는 존재 자체의 권리이며 자주란 나라의 권리임을 천명하시고, 탐관오리들이 가렴주구로 민초들을 수탈함에 항거하시며 일어서신 작은 거인 전봉준 녹두장군님! 장군님께서 치켜드신 갑오농민군의 4대 강령을 다시 한번 외워봅니다.

첫째,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둘째,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셋째, 일본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는다.

넷째,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권신귀족을 모두 제거한다.

장군님께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시어 기선을 장악하고 판세를 바꾸셨지만, 척양척왜의 절박감 때문에 정부와 타협하여 봉기의 불꽃을 멈추셨지만, 결국은 청과 왜를 불러들인 정부는 동학농민군을 배반하고 탄압으로 나섰으니 왜군의 소총과 무진장한 화력 앞에 농민군은 처절하게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그때 정부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청과 왜를 막는 길이 동학농민혁명군이 승리하는 길임에 확신하여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녹두장군님!

님은 가셨지만 지금도 갑오동학농민전쟁의 혁명사상과 정신은 실천사상의 주된 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의 처절하고 애통하고 고귀하신 선열들의 피 흘리심이 조국광복을 이루어 내셨으며,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탐관오리들의 탐욕 앞에 청년학생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서 4·19혁명을 완성하여 자유당 정권이 막을 내렸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20년을 부마항쟁과 6·10항쟁으로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함성으로 끝장냈습니다.

그후 미군 장갑차여중생 사망 사건, 미국소 광우병 통상압박, 백남기 농민투쟁 사망에서부터 박근혜 국정농단까지, 전봉준 녹두장군님의 갑오동학농민전쟁의 사상과 정신은 대한민국 역사 속에 살아 움직이며 민중의 얼과 혼으로 끝없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녹두장군님! 너무 상심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십시오. 비록 조선인 대한민국의 역사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의 바람과 달리 통탄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동학혁명의 굴하지 않는 정신은 영원할 것입니다. 동학혁명의 역사 후에 거듭된 외침과 식민지 독재와 폭압, 권력의 부패에 민중은 어김없이 항쟁으로 일어섰습니다.

36년 식민치하의 역사를 끝내는 순간 민족분단의 철조망을 허리에 두르게 되었고, 자유당 부패정권, 박정희 군사쿠데타 정권, 전두환 군사독재, 박근혜 국정농단으로 이어지는 통탄의 역사 속에서도 전봉준 녹두장군께서 뿌리신 혁명의 정신과 불굴의 항쟁 의지는 끝없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본의 독식 구조와 외세의 압박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외세의 압박에 식량주권을 침탈당하여 식탁의 안전이 무너지고 대한민국 국민건강 지수가 경제개발기구국가 최하위로 추락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정신과 얼 속에 뿌려진 녹두장군님의 갑오동학농민항쟁의 맥이 살아 움직이는 한, 우리 민중은 결코 좌시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국민의 행복기본권인 식량주권, 평등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떨쳐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동학농민전사들께서 왜군의 첨단무기 소총과 무진장한 화력 앞에 처절하게 쓰러져 가신 역사 앞에 통탄의 가슴을 치며, 남북의 허리에 쳐진 철조망을 걷어내고 진정한 해방과 자주,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평등과 상생의 세상을 위하여 저도 다짐합니다. 녹두장군님 가신 뒤에도, 장군님 가신 그 길에 오랫동안 우리 민초들이 불러온 농민 민초들의 애타고 슬픈 노래를 바칩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농사꾼 강기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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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全琫準, 1855~1895)

갑오농민전쟁의 지도자.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맞서 사발통문을 돌리고 1894년 정월 1천여 명의 농민군을 인솔해 봉기했다. 조정이 농민과 동학교도에게 책임을 돌리자, 그해 3월 재차 봉기, 전주성을 점령했다. 겁에 질린 민씨 정권은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이 상륙해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깃발을 올리고 손병희의 북접(南接) 동학군 10만과 합세, 공주성을 공격했다. 우금치에서 관군을 길라잡이로 내세운 일본군의 압도적 화력에 밀려 패퇴하고, 부하의 밀고로 붙잡혀 교수형에 처해졌다. 갑오농민전쟁은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민국(民國)을 이룩하려 한 민족민중혁명의 효시였으며, 그 정신은 의병과 독립군으로 이어졌다.

             강 기 갑

195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사천농고를 졸업했다. 1976년 가톨릭농민회에서 농민운동을 시작,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턱수염과 두루마기에 고무신 차림의 농민의원으로 주목을 받았고,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방호를 꺾고 당선, 민주노동당 당대표로 이명박 정권의 전횡에 맞서 싸우며 강달프라는 애칭을 얻었다. 고향 경남 사천에서 매실농장을 경영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copyright src 100년 편지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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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13:05 2019/04/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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